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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7 Ma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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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評 [글로벌 경영·인문·트렌드 보고서]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노트
- CWPC CEO 서평 : 보고서식 -
2020년 03월 4주차, www.CWPC.org
서진영 2020. 03. 25. |
경영학 박사․철학 박사, 자의누리 경영연구원, |
02-3444-8836, sirh@centerworld.com |
* 동시서평 :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김성회 지음, 북스톤, 2016. CWPC – 2017년 2월 3주차 서평)
[KBS시사고전 I, II ,III] (서진영, 자의누리, 2017) CWPC – 2015년 1월 9월 1주차, 2017년 5월 3주차, 2018년 1월 3주차 서평)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노트’ 전체 소개
* 손정의, 트럼프, 마오쩌뚱, 리카싱, 보구엔 지압, 이순신, 정주영, 이 7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책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노트]의 저자 송의달 기자는 이들의 공통분모로 ‘혁신(innovation)’이라는 한 단어를 이야기한다. 이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격몽(몽매함을 깨우친다)의 정신’으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 <표준국어대사전>은 ‘혁신’에 대해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에 의하면, “현대적 의미에서 혁신은 새로운 아이디어, 창조적 생각, 방법이나 도구 형태의 새로운 상상력(Innovation in its modern meaning is a new idea, creative thoughts, new imaginations in form of device of method)”이라고 한다.
- 이들 7인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동시대 사람들과 달라 손가락질 받을 것을 겁내거나 죽음의 공포 앞에 무릎 꿇으며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전부터 내려오던 고정 관념과 인습의 틀을 깨고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접근을 했고, 끝까지 그런 자세를 견지했다.
- 이들은 모두 고난과 고통·시련의 시간을 마주했다. 그때마다 뜨거운 불덩어리 구멍을 통과하는 듯한 열정과 집중력으로 참고, 견디며, 돌파하였다. 또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았고, ‘돈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했고, 게으름을 멀리했고, 사심·물욕의 유혹에도 잘 흔들리지 않았다.
- 자기 혼자만의 유익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겠다는 ‘중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로만 향하지 않고 끝없이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겸허한 마음을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이들은 구습과 절연하고 세상적 가치·기준을 혁파하는 혁신가의 길을 걸었고, 몇 사람은 지금도 그 길 위에 있다.
* 손정의, 트럼프, 마오쩌뚱, 리카싱, 보구엔 지압, 이순신, 정주영, 이 7인의 삶 속에서 자기 혁신의 방법론을 찾고 싶을 때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 [세상을 바꾼 7인의 자기혁신노트], 송의달 지음, W미디어, 2020.
지은이에 대하여
* 지은이: 송의달
- 안동고와 서울대 외교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언론계에서 사회·경제·정치·국제·산업, 디지털·기획·마케팅 분야 일을 했다. 조선일보 산업1부장, 오피니언 에디터와 조선비즈 대표를 지냈다. 현재 조선일보 선임기자이다.
-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 스티븐 슈워츠먼 블랙스톤 회장, 도미니크 바튼 맥킨지 회장, 엘렌 쿨먼 듀폰 회장, 밥 베첵 베인&컴퍼니 회장 등 세계 정상급 인물들을 단독 인터뷰했다.
- 정치·비즈니스 리더십이나 전략 관련 책 읽기를 즐기며 의지와 깨달음에 따른 변화 가능성을 믿는다. 워싱턴 DC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수와 홍콩 특파원 근무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아세안에 대한 탐구를 이어 오고 있다.
- 저서로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의회〉 〈외국인 직접투자〉 〈한국의 외국인 CEO〉 〈미국을 로비하라〉가 있다.
책의 내용과 서평
손정의 – 일본(한국)
소프트뱅크의 시작
* “목표가 너무 낮지 않은가? 평범한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 손정의(1957~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그룹 사장(CEO) 겸 회장이 2012년 10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자신의 30년 친구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 · 1955~2011) 애플 CEO가 1년 전 세상을 떠난데 대한 충격을 담아 쓴 이 두 줄은 손정의의 인생관을 압축적으로 웅변한다.
* 에도 막부 말기를 산 일본의 대표 유학자 사토 잇사이(1772~1859)가 <언지록>에 남긴 아래 문장이다. “세상에 제일가는 인물이 되고자 하는 자의 뜻은 결코 작지 않다. 뜻있는 자는 마땅히 고금의 제일가는 인물이 되겠다는 뜻을 가지고 스스로 기해야 한다.”
- 1981년 9월, 일본 규슈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의 작은 마을 잣쇼노쿠마. 끈적끈적한 무더위 속 에어컨도 없는 낡은 건물 2층 방에서 24세 손정의는 아르바이트 사원 두 명을 앞에 두고 귤 상자에 올라섰다. 회사 설립 후 첫 조례였다. 그는 ‘30년 후의 우리 회사의 모습을 보라’는 내용으로 1시간여 연설을 했다.
- “앞으로 소프트뱅크(Softbank·‘소프트웨어의 은행’이란 뜻)라는 회사에서 훌륭한 사업을 시작할 겁니다. 그건 바로 디지털 정보혁명입니다. 마이크로컴퓨터를 사용해서 컴퓨터의 힘으로 디지털 사회에 공헌하고 디지털 정보혁명을 일으킬 것입니다. 30년 후에는 두부 가게에서 두부를 세듯이 ‘잇쵸(한 모), 니쵸(두 모)’라고 숫자를 셀 것입니다. 사업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 1천억, 5천억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1조, 2조라는 수 단위로 일을 하는 규모의 회사가 될 것입니다.
- 일장연설을 들은 두 사원은 “저 인간 제정신이냐?”며 두 달도 안 돼 회사를 떠났다. 손정의가 귤 상자 위에서 외쳤던 꿈같은 연설은 25년 후인 2006년 ‘현실’이 되었다. 소프트뱅크의 그 해 매출이 처음 1조엔(약 10조 7400억원)을 넘은 것이다. 그 귤 상자는 지금도 소프트뱅크 본사 빌딩 26층 대회의실에 놓여 있다. 그때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위기와 기회
* 사업 첫 30년은 위기와 고난, 시련의 연속이었다. 손정의 스스로 “큰 위기였다”라고 꼽은 것만 다섯 번이다. 창업 1개월 만에 자본금(1천만엔)의 거의 전부를 전자 전시회 출품에 ‘올인’한 것과, 창업 1년 반 만에 5년 시한부 판정을 받고 중증 만성간염 투병을 3년 반이나 한 것, 그리고 1994년 소프트뱅크 주식공개(IPO)와 미국 진출, 2001년 일본 초고속인터넷 사업 진출, 2006년 업계 최하위 휴대폰 사업자이던 보다폰재팬(vodafone Japan)인수가 그것이다.
- 그때마다 손정의는 “이번엔 제대로 미쳤다”거나 “허풍쟁이”라는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럼에도 보란 듯이 모든 걸 이겨내면서 더 크고 강하게 거듭났다.
* 그는 창업 30주년을 맞은 2010년 6월, 주주총회에서 “앞으로 30년을 넘어 300년 이상 살아남는 회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서는 “맞벌이 부부로 살고 있는 두 딸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고 했다. 손정의는 소프트뱅크를 이끌 차세대 최고경영자, 즉 ‘손정의 2.0’을 키우기 위해 그해 7월, ‘소프트뱅크아카데미아’를 개원해 교장을 맡고 있다.
“나는 AI(인공지능) 기술혁명을 이끄는 지휘자가 되고 싶다. 전 세계 AI 분야의 투자 기회를 독식하겠다.”
손정의와 사카모도 료마
* 손정의 회장의 명함에 적힌 소프트뱅크 그룹 주소는 도쿄 중심부인 미나 토구 히가시신바시 1-9-1번지이다. 17세기 도쿠가와 막부 시대의 대표 유적인 하마리큐 정원과 도쿄 만이 내려다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위치한 시오도메 빌딩 26층에 그가 근무하는 사장실이 있다. 그런데 26층 한 쪽 벽에는 막부 말기 메이지유신을 이룬 주역 중 한 명인 사카모토 료마(1835~67)의 전신 사진이 걸려 있다. 목검과 죽도도 있다.
- 손정의는 왜 여기에 막부 말기 활약했던 최하급 무사(武士·사무라이)인 료마 사진을 걸어놓고 있을까? 그의 료마와 인연은 16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정의는 규슈(九州) 사가현의 일본국철(JR) 도스역 근처의 무번지 판자촌에서 1957년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다 재일 한국인 3세라는 이유로 둘팔매질을 당하는 등 많은 차별대우를 받았다. 의기소침한 소년 ‘야스모토 마사요시(21세기에 결혼하면서 부인의 성을 ’손‘으로 등록한 뒤 손정의는 자신의 성명을 ’손 마사요시‘로 개명했다)시절’에 대한 손정의의 회고이다.
“조난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어느 날, 과외선생님이 생소한 작품 한 편을 권해 주었다. 시바 료타로가 쓴 역사소설 <료마가 간다>였다. 정신이 번쩍 났다. 주인공인 사카모토 료마는 최하급 무사로 태어났으나 강력한 의지와 비전으로 일본 근대화를 이끈 개혁가이자 탁월한 비즈니스맨이다.
그의 삶에 비춰보니 나 자신이 더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차별이니 인종이니 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시시한지 깨달았다. 주눅 들어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든 꼴이라니, 난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다. ‘인생을 불사를 만한 일에 이 한 몸 부서져라 빠져들고 싶다. 그 뭔가를 꼭 이루겠다’는 결심이 가슴 깊이 강렬하게 자리 잡았다.”
* 손정의는 20~30대 젊은이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료마와 마주하고 있으면 작은 일로 끙끙거리며 고민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죽음과 맞닥뜨리더라도 지금을 즐겁고 재미있게 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기운이 솟았다. 료마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상인이 아니라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새로운 사업을 창조하여 세상에 공헌한 걸출한 사업가였다. 료마는 메이지의 신시대를 맞이하기 전에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암살당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질 정도로 료마처럼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싹텄다. 금전욕 같은 게 아니라 100만 명, 1000만 명을 위해 공헌하고 싶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300년 동안 이어졌던 도쿠가와 시대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 눈길을 끄는 것은 손정의가 료마를 본받아 살기로 한 사업가로서의 ‘삶의 방식’이다. 그는 료마처럼 ‘금전욕에서가 아니라 100만, 1000만 명을 위해 공헌하고 싶다’고 했다. 즉 사업의 목적과 의미를 사회와 세상에 대한 공헌에서 찾은 것이다.
- 두 번째로, ‘새로운 사업을 창조’하겠다고 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업과 사업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불사를 만한 일’에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질 정도로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의지다. 손정의가 이때 굳게 다짐한 ‘한 번뿐인 인생, 료마처럼 통쾌하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다’는 마음은 그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 “많은 이들이 ‘그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 만한 값진 일을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바로 나의 뜻, 열여섯 소년이 품은 삶의 포부였다. 좌우명 ‘뜻을 높게!’는 그렇게 내 인생의 중심이 됐다.
* 놀라운 것은 손정의의 결행력이다. 료마를 흠모하는 단계를 넘어 료마와 같은 인생을 살기 위해 변신한 것이다. “마음을 먹었으면 실천해야 한다. 한 번뿐인 인생, 뭔가 큰일을 하자. 일본 최고의 사업가가 되자.” 이런 각오에서 그는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 건강악화로 각혈(咯血·피를 토함)하는 아버지를 이유로 가족, 친척들이 모두 유학을 반대했지만 손정의는 기어코 16세에 태평양을 건넜다 료마의 ‘탈번(에도시대 일본의 무사가 소속된 지역인 번을 떠나는 것)’처럼 돌아올 다리를 끊어버린 결연한 행보였다. 6개월 어학연수 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인 세라몬테스쿨 10학년(우리나라의 고교 1년)에 편입한 손정의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3주일 만에 고교 1,2,3학년 과정을 모두 뗐다. 그리고 홀리네임스칼리지에서 2년 과정을 마친 뒤 1977년 UC버클리대 경제학과에 편입했다.
- 손정의는 이 무렵 인생 전체 계획에 해당하는 그림을 완성했다. 19세 때 만든 ‘손정의 인생 50년 계획’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 50년 동안 10년 단위로 도전한 일, 이뤄내야 할 일을 담고 있다.
- 20대, 내 사업을 시작해 이름을 떨친다.
- 30대, 운영 자금을 축적한다.
- 40대, 일대 승부를 건다.
- 50대, 사업을 완성시킨다.
- 60대,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
* “뜻만 있으면 누구라도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 리더는 공격력, 수비력,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합치더라도 ‘높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찾으라”
* 손정의의 가장 큰 특징을 꼽는다면 그가 유난히 ‘뜻’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평범한 ‘뜻’이 아니라 ‘높은 뜻’이다. 그의 좌우명부터 ‘뜻을 높게!(志を高く!)이다. 이 ’높은 뜻‘은 손정의의 인생과 사업에서 모든 전략 · 전술보다 상위에 있는 최상위 개념이다.
“인생은 한 번밖에 없다. 자신의 인생을 무엇에 걸고 싶은지 마음속에 정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은 돈만 있다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업무 능력을 인정받을 때 더욱 의욕이 생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는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뜻을 빨리 품은 사람은 강하다.”
- 그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끝까지 참고 극복해내겠다는 굳은 각오를 갖고 자기만의 큰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일류 인재”라고 강조했다. “일류 인재들의 상당수는 보수를 노리고 회사를 고른다기보다 이 회사를 정말로 성공시키고 싶다는 큰 꿈을 가지고 있다. 꿈이나 버전, 뜻에 공명(共鳴)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새로운 회사를 고르는 것이다.
- 손정의가 여기서 말하는 ‘뜻’은 신념, 의지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종의 비전(vision)이나 꿈(dream), 방향에 더 가깝다. 그는 7년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아무런 직장이나 돈벌이를 하지 않고 1년 6개월 동안 장고만 했다. 자신의 ‘큰 꿈’을 어디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한 숙려의 시간이었다. 그는 “오르고 싶은 산을 정하라. 그러면 인생의 반은 결정된다”는 생각을 돛대 삼았다. ‘오르고 싶은 산’을 정하는 게 인생을 좌우하는 큰 승부처라는 얘기다.
- 그는 인생을 걸 만한 사업을 고르기 위해 여섯 개의 기준을 정했다. 남이 안 하는 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 최고가 될 수 있는 일, 절로 열의가 샘솟으며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기술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 등이다. 손정의가 내린 결론은 ‘디지털 정보혁명으로 세상의 지혜와 지식을 공유하며 인류에 공헌한다’는 것이었다.
- 손정의가 정립한 ‘큰 뜻’은 이후 그가 벌인 모든 사업과 투자 결정의 판단 기준이 됐다. 어떤 사업이건 이 대의에 부합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바보 같은 것”이라고 해도 이 대의에 맞으면 반드시 실행하고 성공시켰다. 비난이나 조롱에 굴하지 않고 33년의 짧은 삶을 산 ‘인생 스승’ 사카모토 료마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50수 앞을 내다보고 결정한다”
* 2017년 4월 21일, 저자 송의달 기자는 시오도메 빌딩 26층의 소프트뱅크 그룹 사장실 옆방 회의실에서 손정의를 만나 ‘30년 넘게 비즈니스 성공을 거두고 있는 핵심 요인 3개’를 꼽아달라고 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비전(vision)이 첫 번째, 전략이 두 번째, 전술이 세 번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제대로 이뤄지려면 내면에 열정(passion)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 그의 좌우명인 ‘뜻을 높게’는 비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武將) 오다 노부나가처럼 시대를 앞서서 패러다임 변화를 간파하고 ‘선제(先制)경영’을 하는 것은 전략에 속한다. 큰 목표와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전술과 기법도 동원한다.
-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 짓는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열정’이다. 손정의의 삶은, 그가 사카모토 료마를 처음 접한 중학교 때부터 만 60세가 넘은 지금까지 ‘열정’이라는 글자를 빼면 설명이 안 된다. 미국 유학시절부터 그랬다.
* 한편 산전수전 다 겪은 손정의는 ‘멘탈 게임(mental game·정신 관리 게임)의 고수’이기도 하다.
- “모든 일을 시작할 때 우선 성공한 다음의 이미지를 먼저 머리에 떠올리고 ‘좋아, 성공했어!’라고 기뻐해보자”고 하는 식이다.
- 이렇게 먼저 기뻐하면, 그 기쁨이 스스로를 자극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엔진이 되어 이후의 난관을 별로 걱정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나 자신이 성공의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 후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그 기쁨을 위해서 참을 수 있다”고 손정의는 말했다.
‘손의 제곱 법칙’으로 차별화
* 손정의는 기업가로서 드물게 자기만의 ‘경영 전략’을 만들어 비즈니스 결정에 직접 적용해 오고 있다. 20대 중반에 스스로 창안한 ‘손(孫)의 제곱 법칙’이 그것이다. 그는 일본의 격주간 비즈니스 잡지 <프레지던트(PRESIDENT·1997년 1월호>의 ‘리더가 좌우명으로 삼는 손자(孫子)의 명언’이라는 특집기사에서 ‘손의 제곱 법칙’을 만든 경위 등을 소개했다.
“<손자병법>은 쓰인 지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참신한 암시가 가득 담겨 있는 실천서이다. (중략) 나는 3년 반 동안 만성간염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야 했던 시기에 손자병법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나를 강하게 성장시켜줄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손자를 공부했는데, 그때 얻은 결론으로 손자의 ‘손’과 나의 성(姓)을 곱해 ‘손의 제곱 법칙’이라고 이름 지은 비즈니스 법칙을 만들어 냈다.”
* ‘도천지장법, 정정략칠투, 일류공수군, 지신인용엄, 풍림화산해 道天地將法, 頂情略七鬪, 一流攻守群, 智信仁勇嚴, 風林火山海’, 손자병법에서 나오는 구절과 그가 창작한 문자를 조합한 이 25자가 ‘제곱 법칙’의 전부다. 손정의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할 때마다 이 25자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수없이 자문자답을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과 비즈니스 방향을 결정해 왔다”고 했다. ‘손의 제곱 법칙’이 적용된 대표 사례로 ‘7할 승부론’을 꼽을 수 있다. 제곱 법칙의 ‘정정략 칠투’가 모태인데, ‘칠(七)’은 ‘7할 정도의 승산이 있을 때 승부를 건다’는 뜻이다.
“이길 확률이 절반 밖에 되지 않는데 싸움을 지는 건 바보나 할 짓이다. 그런 사람은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다. 패배 가능성이 3할 이상인 위험은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문제는 광속도로 움직이는 IT 세계에선 승리가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간 때를 놓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승산 7할’이 행동 여부를 결정하는 잣대이다. 물론 승산이 ‘칠’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여기서 리더의 자질과 그릇이 드러난다”
* 산꼭대기(頂)에서 비전을 선명하게 세우고, 관련 정보(情)를 철저하게 수집해야 한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전략(略)을 궁리하고, 자신의 힘으로 싸워(闘) 목표를 이뤄야 한다.
‘7할 승부론’과 일류기업 비즈니스군
* 제곱 법칙의 또 하나의 원칙인 ‘일류공수군’은 시대 흐름(流)을 선도하는 1등 기업들을 공략(攻)하되 리스크 관리 같은 안전조치를 충분히 하며, 다양한 포트폴리오로 복수의 비즈니스 라인이나 조직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부터 ‘비전펀드’를 만들어 유망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일류공수군’의 발현이다.
- 1995년 4월, 손정의는 셸던 아델슨 회장과 만나 5분 만에 세계 최대 컴퓨터 전시회인 컴덱스를 8억 달러에 사들이기로 합의했다. 1999년 10월에는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창업자 겸 회장을 만나 6분여 만에 200만 달러 출자를 결정했다. 이 200만 달러는 알리바바 그룹의 주가 급등으로 수천 배 투자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2016년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암(ARM)을 35조원을 들여 인수할 때는 협상 개시부터 최종 합의까지 딱 2주 만에 모든 게 끝났다.
*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중요한 협상은 숲처럼 고요하게, 공격할 때는 불처럼 맹렬하게, 위기에 빠져도 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싸움에서 이기면 상대를 바다처럼 포용한다는 게 제곱 법칙의 ‘풍림화산해’ 원칙 그대로이다.
- 먹잇감을 집요하게 쫓다가 승산이 보일 때 그는 번개치듯 밀어 붙인다. 이것이 흉내 낼 수 없는 ‘속전속결 승부사’ 손정의의 진면목이다. 상황이나 주변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정해 놓은 법칙에 따라 내리는 소신의 경영! ‘전략가 손정의’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부단히 혁신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 손정의의 풍림화산해 전략 중, 사업 확대의 화(火) 전략에 대해 서평자 서진영의 <KBS 라디오 시사고전> 2016년 4월 19일자 원고에서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손정의 회장의 성공비결로 손자병법에서 익힌 풍림화산(風林火山) 중, 불의 전략 ‘침략여화(侵掠如火)’를 살펴볼까 합니다.
侵 침노할 침
掠 노략질할 약
如 같을 여
火 불 화
<손자병법> 군쟁편에 나오는 이 말은 ‘침략할 때는 불과 같이’라는 전략입니다. 이는 대군이 맹렬하게 공격하는 모습을 벌판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며 퍼져나가는 모습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공격할 때는 단숨에 쳐들어가지 않으면 승기를 거둘 수 없다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공격에 머뭇거리면 오히려 적에게 당하고 마는 것이지요.
손정의 회장은 사업 확대에 아주 의욕적이어서 항상 침략여화, 즉 “불처럼 맹렬하게 사업을 확대하라”고 호령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손정의 회장은 사업 확대에도 세 가지 패턴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기존 사업의 절대액을 증가시켜나가는 패턴.
둘째는, 완전히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패턴.
셋째는, 회사 일부를 분리 독립시켜나가는 패턴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럼 이 세 가지 패턴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손정의가 내놓은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전부한다.”
사업을 확대하고 싶다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패턴으로 공세를 펼치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손정의는 그야말로 ‘불처럼 맹렬하게’ 다양한 사업으로 확대하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으며, 세계 최대의 컴퓨터 전시회, 컴덱스를 8,000억 원 (800억 엔)에 매수하고, 빌 게이츠의 한마디에 컴퓨터 관련 잡지 <피시위크(PC Week)>의 발행사인 지프 데이비스사 매수를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갓 창업한 야후에 1000억원(100억 엔)을 투자하는 등 불같은 전략을 시도해나갔고, 알리바바의 마윈 사장을 만나 불과 6분 만에 200억 원의 투자를 결정한 것은 이미 살펴보았지요.
우리는 환경과 불경기 탓만 하며 의욕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침략할 때는 불과 같이’ 침략여화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고비 때마다 도움 준 우군들
* 아무리 잘 준비되고 뛰어난 기업가라고 해도 마음 맞는 동업자나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 사업은 한계가 자명하다. ‘귀인’들은 결정적인 고비마다 숨통을 틔워주며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한다. 손정의의 비즈니스 인생도 마찬가지다. 초기부터 손정의에게는 ‘사람 복’이 많았다.
- 미국 유학시절 ‘다국어 번역기’ 발명 아이디어를 냈을 때, 그는 음성발신 분야의 권위자이던 같은 대학(UC 버클리)의 포레스터 모더 교수를 무작정 찾아갔다. 모더 교수는 “당신을 고용하겠다. 도와 달라”며 당돌하게 나오는 무명의 가난한 유학생 손정의를 성심껏 도와줬다. 비슷한 시기에 사사키 다다시 샤프 전무는 손정의가 만든 다국어 번역기 시제품만 보고 2천만엔을 선뜻 건네줬다. 그는 회사 사무실을 도쿄로 이사할 것을 조언했고, 자기 집을 담보로 1억엔을 빌려 자금난에 빠진 손정의에게 빌려주는 등 평생 ‘은인’이 됐다.
- 손정의는 고생의 연속이었던 창업가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지원해준 사람들을 ‘은인’이라고 부르며 이들에 대한 감사 표시를 한다. 매년 5월이면 ‘은인’ 10명의 집에 꽃을 보내고 회사 전체를 동원해 ‘은인 감사의 날’ 행사를 열고 있는 것이다.
AI 시대 선도하는 300년 기업 도전하다
* 그가 지금 최종적으로 목표 삼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손정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자신의 사업보다는 전략적인 회사 집단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비전(vision)을 통하여 뜻을 공유하는 기업가들을 모으는 군 전략으로 세력을 늘리는 것이다. ‘인공지는(AI)이 성장의 원천’이라는 공통된 비전으로 기업들을 묶은 그룹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시작했지만 커다란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본업은 마이크로칩 제조도, 소프트웨어 판매도 아니다. 바로 정보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나는 새로운 시대에는 ‘웹(web)형 조직’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조직은 구성체들이 자율·분산·협조의 원칙에 따라 서로 맞물려서 움직인다. 각 구성체들은 적재적소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며 어떤 특정 브랜드, 기술, 사업 모델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조직과 연계해 나가기도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Gp8jBi5nOOk제목: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강의종류: [강의] 손정의 강의검색어: 손정의 강의 |
마오쩌둥 - 중국
책을 통해 일신우일신한 혁신적 삶
* 마오쩌둥은 1976년 9월 9일 0시 10분에 서거했다. 진료 기록에 따르면 9월 8일 온 몸에 튜브를 꼽고 있던 마오쩌둥은 의사가 응급처치를 하는 상황에서도 7분 동안 책을 읽었다고 한다.
“당신이 백 살까지 공부를 했더라도 남들이 생일 축하를 할 때 당신은 여전히 ‘난 이미 다 배웠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신이 하루를 더 살면 하루를 더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죽더라도 배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당신의 아들, 손자, 손자의 아들, 손자의 손자가 또 배워나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인류는 얼마나 배웠겠는가? 고증할 수 있는 문명사는 고작 이삼천 년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또 얼마나 배워야 하는가? 얼마나 많은 자손들이 대대로 배워나가야 할지 알 수 없다.”
- 1938년 8월 22일, 마오쩌둥이 공산당 중앙당교 연설에서 한 말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마오의 평소 생각이 담겨있다. 베이징 시내 중난하이 내 마오쩌둥의 집무실 겸 개인서재 이름은 ‘국향서옥’이다. 책이 워낙 많아 붙여진 명칭이다. 1972년 2월 21일,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이 국향서옥에서 난생 처음 마오쩌둥을 만났다.
* 마오쩌둥은 독서와 관련해 <맹자>에 나오는 “서경을 그대로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느니만 못하다”는 구절을 자주 인용했다. 이 말은 아무리 권위 있는 저작물이라도 내용을 맹신해서는 안 되며, 비판적이며 독립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 주목되는 것은 마오쩌둥이 책에서 얻는 지식과 거의 동등하게 ‘글자 없는 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 “사회는 학교이며, 일 가운데서 모든 것을 공부한다. 공부하는 책에는 두 종류가 있다. 글자가 있는 강의안은 책이고, 사회의 모든 책도 책, 즉 ‘무자천서(無字天書)’이다.”
하지만, 편중된, 닥치는 대로 독서의 한계
* 하지만 그의 독서에도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와 서양 근대 문명에 대한 그의 지식과 이해 수준이 얕았다. 해리슨 솔즈베리 같은 전분가는 “마오쩌둥이 서양 자본주의에 관해서 일찍이 <공산당 선언> 중국어 번역본을 읽음으로써 얻은 아주 기초적인 수준을 넘어설 정도의 지식 밖에는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 기술에 관해서도 무지했다. 마오쩌둥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과학과 기술의 필요성은 인정했으나 현대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수준이 못 됐다. 과학이나 기술 관련 보고서 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독자적인 능력이 없었다. 마오쩌둥이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처럼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공사와 같은 대규모 대중(大衆) 노역 동원을 추진한 데에는 기술에 대한 무지가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 더욱이 마오쩌둥은 평생 한 번도 서구 세계를 가본 적이 없었다. 이런 편향된 독서와 편향된 경험은 마오가 국가 운영을 하는데 독소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서양과 자본주의에 대한 마오쩌둥의 무지와 닥치는 대로 읽은 비체계적인 독서는 집권 후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마오쩌둥의 유격전술
* 마오쩌둥이 얘기한 유격 전술은 16개 한자로 구성돼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 적이 전진하면 우리는 퇴각한다! ((敵進我退)적진아퇴)
- 적이 멈춰선 진을 치면 우리는 그들을 교란시킨다! ((敵駐我擾)적주아요)
- 적이 피로하면 우리는 공격한다! ((敵疲我打)적피아타)
- 적이 퇴각하면 우리는 추격한다! ((敵退我追)적퇴아추)
*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략적으로는 적진아퇴(敵進我退)의 원칙에 따라 방어에 주력하면서 전술적으로는 적피아타(敵疲我打)와 적퇴아추(敵退我追)의 원칙에 따라 기회를 포착해 공격을 가한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병력 분산과 대중 획득에 치중하며, 유사시에는 병력 집결과 분산이 자유롭고 신속한 신출귀몰의 전법(戰法)이라는 것이다.
* “마오의 유격 전술은 단순한 군사적 작전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유격 전술은 적이 갖고 있는 ‘무력에서의 강점’을 자기들은 그들이 추격해올 수 없는 산간벽지를 근거로 한 ‘공간에서의 강점’으로 대항하고, ‘공간에서의 강점’이 적에게 빼앗길 경우 다른 곳으로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오랜 시일을 두고 대항하는 ‘시간에서의 강점’으로 맞서고, 이러는 동안에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들의 ‘인력에서의 강점’을 조성함으로써 적의 ‘무력에서의 강점’을 이겨내고자 하는데 그 근본 취지가 있었다.
* 김상협 전 고려대 총장이 저서 <모택동 사상>에서 내린 분석이다. 김 전 총장은 “무력이 모자라는 것은 공간으로 메우고, 공간이 모자라는 것은 시간으로 메우며, 장기적으로 인력을 형성하는, 최종적으로는 ‘인력’을 가장 중시하는 것이 유격 전술의 기본방침이었다”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마오쩌둥의 혁신은 군사적 작전기술의 범위를 넘는 광범위하고 중대한 것이었다.
리카싱 - 싱가폴
6만원짜리 손목시계 맨 최고 부자
* 만 90세가 훌쩍 넘은 리카싱(1928~·중국 표준어 발음으로는 리자청) 홍콩 청쿵 그룹 창업자 겸 고문은 ‘전방위 혁신가’이다. 동양문화권에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여러 방식과 단절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행동으로 옮겨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룬 혁신은 다방면에서다. 개인으로서, 기업가로서, 부자(富者)로서, 조직의 장으로서, 부모로서... 각각에 부여되어온 존재 이유와 업(業)에서 탈피해 그는 새로운 유형의 삶을 보여 왔다.
- ‘리카싱표 혁신’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것은 외관, 즉 차림새에서다. 170cm 남짓한 키의 그는 항상 큰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다. 개인 재산 294억 달러(약 35조원·2019년 6월 미국 <포브스>지 기준)을 가진 홍콩 1위, 세계 30위 부호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가 몸에 착용하는 어디에도 명품 브랜드는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없을 전망이다.
- 뿔테 안경은 보통 제품이고, 신발과 양말도 평범한 것이다. 양복은 검은색을 주로 입는데 10년 이상 된 것이다. 구두는 반드시 밑창을 갈아 해어질 때까지 신는다. 길거리에서 만난다면 외관으로 그가 세계적인 수퍼리치(super-rich)라고 여길 사람은 없다. 인자하고, 깔끔하고, 지적이며 쾌활한 이웃집 할아버지로 생각할 뿐이다. 출퇴근할 때 그가 타는 승용차 역시 30년 넘게 같은 롤스로이스이다.
* 리카싱은 대신 손목시계의 시계바늘을 30분 당겨 놓고 있다. 이유에 대해 그는 “내가 약속을 잊더라도 30분이면 홍콩 시내 어디든 갈 수 있어서”라고 말한다.
- 그는 10여 년 전만 해도 손목시계 바늘을 8분 빠르게 맞춰 놓았었다. 8분으로 한 것은 중국어 발음으로 ‘8(八·빠로 발음)’은 돈을 잘 번다는 뜻인 ‘(發)파’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80세가 넘으면서 30분으로 늘린 것은 일상에서 더 벗어나 삶에 여유를 갖고 관조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리카싱의 검소한 생활은 뿌리가 깊다. 그가 밝힌 일화이다.
- “10대에 시계회사 외판원과 플라스틱벨트 회사 영업사원 시절, 받은 월급의 90%를 어머니에게 드리고 나는 한 푼도 그냥 쓰지 않았다. 이발은 삼 개월에 한 번씩 했는데 나중에는 스님처럼 빡빡 깎았다. 3년 8개월 동안 영화관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관람료가 꽤 비쌌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나중의 사업 자금을 위해 단 돈 1전이라도 저축하려 했다.
- 중국 남부 광둥성 차오저우에서 태어난 리카싱은 중일전쟁의 전란을 피해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아버지와 함께 1940년 가족 전체가 홍콩으로 왔다. 그런데 홍콩에서 결핵을 앓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장남인 리카싱은 13살 때부터 소년가장이 됐다. 찻집 종업원을 시작으로 외판사원 등으로 일했다. 중학교 1년을 중퇴한 그는 중학교 교재를 사서 혼자 공부했는데, 그것도 모두 헌 중고 책들이었다. 다 본 다음엔 헌책방에 다시 팔았다. 22세에 청쿵플라스틱을 세워 사장이 된 후에도 자가용은커녕 버스·페리 같은 대중교통을 탔다. 웬만한 곳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외판원으로 일할 때 홍콩 전역을 돌면서 몸에 밴 속보는 그의 평생 습관이다.
- 리카싱은 와인 한 방울조차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담배와 춤에는 손대본 적 없는 문외한이다. 집은 1963년 결혼 직전에 구입한 3층 양옥집(주소는 리펄스베이 로드(RepulseBay Road 79번지)에서 한 번도 이사 가지 않고 6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자신이 3층에 살고, 장남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은 2층에 있다. 리카싱은 1993년 큰 아들의 결혼식 무렵 자신의 집을 공개했는데, 한 층의 면적은 185m2(약56평) 정도라고 한다.
* 이 ‘1탕(湯) 4찬(饌)’은 1950년 초부터 변함이 없다. 아들이나 손자 손녀들과 함께 할 때도 똑같다. 고기보다 야채와 두부 등을 즐겨선지 그의 몸무게는 1967년부터 65~68kg을 유지하고 있다.
* 리카싱의 기상 시간은 평생 오전 5시 59분이다. 취침시간이 늦거나 천둥이 치거나 폭우가 쏟아져도 똑같다. 그가 62세이던 1990년 1월 1일, 네 살 아래인 부인 좡웨밍 여사가 요절했다. 하지만 그 후 리카싱은 어떤 여성과도 스캔들이 없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돈 많은 부자이면서도 스스로 수도승이나 신부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건강 관리법도 단순하다. 수영과 출근 전 매주 2~3차례 아침에 파(par)3 골프 홀을 도는 게 거의 전부다.
“내가 가진 것은 오직 지혜와 학습과 노력뿐”
* 1950년 22살 때, 5만 홍콩달러(약 750만원)로 청쿵플라스틱을 세워 사업가로 길을 시작하고, 그가 1950년대 후반 홍콩 사회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도 학습의 힘 덕택이었다.
- 청쿵플라스틱은 첫 해부터 흑자를 매년 냈으나 성장은 더뎠다. 리카싱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책·잡지를 30분~1시간 정도 정독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1956년 어느 날 밤, 영문전문잡지 <플라스틱(Plastic)>에서 “이탈리아의 한 회사가 플라스틱 조화(造花) 시제품 생산에 성공해 곧 대량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기사에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 히트 상품이 될 것임을 직감한 그는 즉시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해당 기업을 찾아가 천신만고 끝에 제품 관련 정보와 제조 노하우를 익혀 귀국했다. 연구개발에 힘써 그는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플라스틱 조화 공장을 만들어 큰돈을 벌었다. ‘조화 대왕’이란 별명도 생겼다.
- 리카싱은 “나는 사업가로서 약점이 많아 훌륭한 비즈니스맨이 못 된다”고 말한다. “사람 접대에 능하지 못하고, 비즈니스 관계를 맺는데 서툴고 감정에 쉽게 이끌린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넘어설 수 있는 비장의 카드를 그는 갖고 있었다. 그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혁신하려 열심을 다하는 마음’이었다. 리카싱은 강조한다.
“접대하고 사업 파트너들과 어울리는 데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대신 스스로 공부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힘을 키웠다. 그것이 성공의 핵심이다.”
* 리카싱의 70여년 사업 행로를 추적해보면 몇 가지 뚜렷한 원칙이 드러난다. 첫 번째는 ‘여시구진(與時俱進)’, 즉 “시대와 호흡하며 함께 나아간다”이다. 리카싱은 시대 변화와 세계 흐름에 발맞춰 주력 업종과 투자 대상 국가를 바꾸어가며 뛰어난 실적을 내왔다.
* 리카싱의 현재를 만든 또 하나의 단어가 노력에 대해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김성회 지음, 북스톤, 2016. CWPC – 2017년 2월 3주차 서평) 에서 조금 더 살펴보자.
“남들은 내가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내가 그 운을 잡기까지 죽도록 노력한 건 제쳐놓고 말이다.”
* 홍콩 제일의 갑부인 리카싱의 말이다. 세상일의 성패는 운에 달려 있는 것이지 노력에 달려 있지 않다는 운수론에 대한 나름의 반론이다. 우연이나 뜻밖의 운으로 여겨지는 것도 들여다보면 언젠가 뿌린 씨앗의 열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 나는 운명을 전도시키는 요인을 노력(努力)과 노력(勞功)의 차이라고 본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른가? 노력(努力)은 생산을 위해 힘쓰는 육체 활동이다. 반면에 노력(勞功)은 목적을 위해 열정을 다한다는 의미다.
* 한자 자원에서도 이 둘은 큰 차이가 있다. 힘쓸 노(勞)는 종 노(奴)와 힘 력(力)자로 구성돼 있다. 종 노(奴)는 여자〔女〕에게 일을 시키는〔文〕 모습이다. 즉 노비〔奴〕처럼 힘껏〔力〕 일하는 것이 바로 노력(努力)이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저 시늉으로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애만 쓰면 되는 노력이다.
- 반면에 일할 노(勞)자의 유래는 어떤가? 등불 형(熒)과 힘 력(力)이 합쳐진 글자다. 환하게 등불을 밝히고 밤새 노력하는 것이다. 그저 고되게 애만 쓰면 되는 노력(努力)과는 다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구에 의해 불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불씨를 지펴내는 적극적인 추진력을 동반한다.
- 어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노(努)는 노동(labour)에, 노(勞)는 열정(passion, desire)에 가깝다. 노동과 열정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순도와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 같지만 감정적으로 다르다. 노동을 뜻하는 프랑스어 ‘travail’과 라틴어 ‘labor’의 어원은 ‘고문, 속박’이다. 영어 ‘labour’의 어원인 ‘labor’는 고통이 수반되는 노력이라는 의미다. 독일어 ‘arbeit’는 가난하다는 말과 어원이 같다. 가난하기 때문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 수밖에 없고, 입에 풀칠하기 위해 일하니 즐거울 리 없다.
* 노동과 노력의 결정적 차이는 창의성과 전략이다. 이 둘은 하다못해 마당에 비질할 때조차 차이가 난다. 노동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눈이 와도 비가 와도 자신에게 할당된 일, 그저 ‘비질’만 하루 종일 하면 그만이다. 반면에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비질을 하고 나서 무엇을 더할지 플러스알파를 생각한다. 음식점에서 점원으로 머무르는 사람은 그저 서빙만 열심히 할 뿐이지만, 사장이 될 사람은 고객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작은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연구한다. 시키는 일만 노예처럼 하는 노력(努力)으로는 운명을 역전시키기 힘들다. 플러스알파의 창발적 노력이 가해져야 팔자를 때려눕혀 무한대(∞)로 바꿀 수 있다.
* 금수저가 아니라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흙수저를 뜨거운 가마에 굽는 ‘노력’을 통해 도자기 수저로 만들지 않는 것은 본인의 노력 부족이요, 책임이다.
무부채 경영
* 1979년에는 홍콩인으로는 최초로 식민 종주국 영국 기업을 통째로 인수했다. 대상 기업은 항만개발·에너지·운송·금융 등을 하는 ‘허치슨왐포아(Hutchison Whampoa·和記黃埔)’였다.
- 허치슨왐포아 인수에는 리카싱이 평소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던 홍콩상하이은행과 중국 중앙정부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1985년 홍콩 최대 전력회사인 홍콩전력을 인수하고, 캐나다 토론토 소재 힐튼호텔, 캐나다 임페리얼상업은행 주식을 사들여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 시동을 걸었다.
* 리카싱은 영국 투자이유에 대해 ”큰 비즈니스 기회는 오히려 유럽이나 영국처럼 가라앉은 곳에 있다. 법치 문화가 확고한 영국에서 SOC사업은 안정된 수익을 내는 매력적인 투자처이다“고 말했다.
- 그는 기업 회계에 매우 보수적인 방식을 적용해오고 있으며, 1956년부터 지금까지 일절 빚 없는 ‘무부채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나는 개인 빚을 지지 않고 있다. 계열사들이 빚을 일부 갖고 있더라도 금융사가 연락 오면 24시간 내에 모두 갚을 수 있다. 최장 72시간 내에 전부 상환할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수많은 사건이 벌어졌지만 청쿵그룹의 재무 상태가 위험하다는 얘기는 한 번도 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최악에 대비해왔다.
* 그의 비즈니스 좌우명인 ‘안정을 유지하면서 전진하고, 전진하면서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이런 자세를 가리킨다. 이런 원칙을 지킴으로써 리카싱은 인수합병에서 승리한 기업들이 많이 부딪치는 ’승자의 저주‘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
* ‘제2의 록펠러’ 또는 ‘아시아의 록펠러’라고 불리는 리카싱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것. 이런 게 인생에서 궁극적인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기꺼이 내 필생의 사업이라고 여긴다.”
* 리카싱은 인생에서 즐거운 순간으로 ‘좋은 책을 읽거나 골프에서 나이스 샷 할 때, 자선활동을 할 때, 가까운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친구들을 사귀는 때’를 꼽았다. 그는 “이 가운데 가장 즐기는 것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교육과 의료건강사업에 쏟아 부을 때”라고 했다.
“부는 많아도 귀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진정한 부는 자기가 번 금전을 사회를 위해 쓰려는 속마음에 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바른 뜻’이 없는 사람은 가장 가난한 사람일 뿐이다.”
- 리카상이 <논어> 술이 편에 나오는 “의롭지 못한 채 부귀를 누림은 뜬구름 같다”는 구절을 늘 마음에 새기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다. 홍콩 센트럴의 청쿵빌딩 70층 그의 집무실에는 대형 동양화가 걸려 있다. 여기에 적혀 있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 ‘산중문답’이 리카싱의 마음을 대변한다.
“나에게 ‘무슨 뜻으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기에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
복숭아꽃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가니
별천지요 인간 세상 아니라네”
총재산의 3분의 1 사회 환원…‘제2의 록펠러’ 되다
* 리카싱은 번 돈을 쓰는 데에서도 ’혁신‘적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사고는 당대에 모은 재산을 아들이나 손자 등 직계 가족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리카싱은 만 52세이던 1980년 ’리카싱기금회를 세웠다. 이어 2000년대 들어 기금회를 ‘셋째 아들’이라고 부르며 총 개인 재산의 3분의 1을 여기에 넣겠다고 공언했다. 리카싱기금회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가 세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 리카싱기금회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출생지인 광둥선 차오저우 부근 산터우 대학에 20억 홍콩달러를 기증해 중국 남부의 간판 대학으로 키웠다. 베이징, 텐진, 시안, 뤄양 등에도 대학을 세웠다. 2008년 쓰촨성 지진사고가 났을 때는 1억3천만 위안을 기부했다. 4천 명에 달하는 언청이 무료 수술도 했다. 장애인, 농아 등을 상대로 의료지원과 빈곤가정 구제, 재해민 지원 등을 위해 매년 수억 달러를 내고 있다. 2015년까지 ‘리카싱기금회’가 기부한 돈만 150억 홍콩달러에 이른다.
* 기금회 활동이 교육과 의료에 집중되는 것은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아버지를 일찍 여윈 리카싱의 개인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평생 신념인 ‘지식이 운명을 바꾼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리카싱은 세상을 일찍 뜬 아내를 기려 그녀의 모교인 홍콩대학에 3500만 홍콩달러를 기부해 ‘좡웨밍관’을 세웠다. 홍콩대학에 아내 이름을 딴 ‘좡웨밍기념회’도 운영하고 있다.
* 리카싱은 기금회에 낼 수표 서명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병원·농촌·학교 등을 찾아가 기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불편함은 없는지 직접 확인한다. 그는 “기금회의 지원 현장에 직접 가봄으로써 돈의 진정한 가치와 내 사업의 의미를 새삼 발견한다”고 말했다. 리카싱은 2009년 중국 500대 기업가를 대상으로 한 ‘제1회 중국 기업가 대중이미지 만족도 조사’에서 1위로 선정됐다. ‘의로운 부’를 실천해온 점을 공식 인정받은 것이다.
“업무시간의 70~80%는 미래 준비에” - AI·비트코인·로봇·빅데이터에 투자
* 리카싱은 2006년 10월 인터뷰에서 “주말이나 퇴근 후는 물론 업무시간 중에도 90% 이상을 내년이나 5년, 10년 후의 일을 생각하고 준비하는데 바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6년 브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나의 경영활동을 돌아봤을 때 전체 시간의 20~30%만 공장이나 제품 관련으로 보냈고, 70~80%는 미래를 궁리하고 대비하는데 쏟았다”고 했다.
- 부단한 미래 대비 노력으로 리카싱은 경쟁자들보다 빠른 선견의 눈을 갖고 더 빠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를 최강의 불패 기업가로 만들었다. 인구 750만 명의 홍콩은 ’리카싱 도시‘나 마찬가지다. 청쿵그룹의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 홍콩의 마지막 총독을 지냈던 크리스 패튼 경은 리카싱에 대해 “그는 상업적 본능이 천재에 근접한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인물이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리카싱 자신은 정작 자신의 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20세 전에 거두는 성과는 100% 부지런함으로 얻어진다. 20세에서 30세까지는 성공의 10%는 운, 90%는 노력으로 얻어진다. 그 이후에는 운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 지금 내 경우에는 운이 30~40%를 차지하고 있다.”
- 리카싱은 행운아다. 그러나 아무리 운좋은 사람이라도 노력이나 준비하지 않고 ’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린다면 행운은 그를 외면할 것이다. 리카싱은 타고난 운에다가 부단한 노력과 준비로 더 큰 운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리카싱의 삶을 보노라면 ’운은 자신을 혁신해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 리카싱은 2017년 5월 인공지능(AI) ‘알파고’를 만든 IT 기업 딥마인드(DeepMind)의 창업자인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응용AI부문 총괄책임인 무스타파 술래이만을 홍콩으로 초청했다. 두 사람은 5월 26일 리카싱 앞에서 최근 AI 동향과 각종 성과를 들려줬다. 그때마다 리카싱은 진지한 표정으로 메모했다. 때로는 너무 흥분해 수차례 일어나기도 했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 다음날 리카싱은 인공지능 머신 알파고와 중국 커제 9단과의 특별 바둑 대국 중계를 봤다. 그의 ‘AI 과외공부’에 대해 중국 웨이보 등에는 “아흔 살 고령인데도 고등학생처럼 열심히 메모하고 질문을 거듭하다니 대단하다”같은 댓글들이 달렸다.
보구엔 지압 - 베트남
보구엔 지압의 탄생
* 보구엔 지압은 1911년 8월 25일 베트남 중부 꽝빈성 안싸에서 일곱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농사도 짓는 공무원으로 집안은 유복했다. 지압(Giap)은 외세의 공격을 막아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구정 대공세의 실제 사실은?
* 보구엔 지압이 주도한 ‘구정 대공세’였다. 그러나 그 해 2월 11일까지 월평균 3만5천여 명이 사살됐고, 5800명이 생포됐다. 구정 연휴 혼잡을 틈타 베트남군으로 위장한 월평균 7만여 명이 장례식 관이나 야채 수송차량에 무기와 탄약 등을 숨기고 잠입해 거사를 꾀했으나 패퇴한 것이다.
- 하지만 이후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1월 30일 새벽에 6시간 정도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받는 모습을. 대사관 안에 있던 취재 기자들이 현장 기사로 보낸 게 발단이었다. 기자들은 전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이공 미 대사관이 점령당했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단 1보를 타전했다. 이 뉴스는 오보로 판명났지만, 미국 TV, 신문은 월맹의 구정 공세를 톱뉴스로 연일 장식했다.
“흔적조차 안 보이던 적군이 홀연히 나타나 수백 군데 동시다발 공격을 가했다.”-<타임>
“우리는 베트남 전에 대한 정치인들의 장밋빛 발언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CBS>뉴스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
* 그러자 사이공 대사관 급습에 공포심을 느낀 미국인들 사이에 전쟁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다. 대학가에선 반전 시위와 병역 기피가 들불처럼 번졌다. 린든 존슨 행정부는 맥나마라 국방장관과 웨스트몰랜드 주월미군 사령관을 해임했지만 반전여론을 잠재울 수 없었다. 3월 31일 존슨 대통령은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월맹에 평화 협상을 제안했다.
- 물리적 전투에서는 미국이 이겼지만, 심리적, 정치적 전투에서는 월맹이 완승을 거둔 것이다. 후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3년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를 결행하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발을 뺐다.
- 미국과 평화 협정을 맺은 월맹은 1975년 사이공에 입성, 숙원인 통일을 이뤘다. 1965년부터 시작된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도 끝났다.
성공의 힘은 어디에서?
* 보구엔 지압은 정치전, 심리전의 고수였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서방 민주사회에서 미디어의 엄청난 파급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1968년 1월 구정 대공세에서 방어가 철통같이 단단했던 미군대사관과 미군기지, 월남 대통령궁 등을 조준 공격한 게 이를 보여준다. 미국 언론들을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미국 안에서 지금 전투가 벌어진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봇물 터진 듯 쏟아냈다. 보구엔 지압이 정교하게 계산해 미리 쳐놓은 ‘먹잇감’을 덥석 물은 꼴이었다.
- 보구엔 지압은 베트남 전쟁 종전 후 미국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968년의 구정 공세를 군사적 측면에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틀렸다. 나는 더 넓게 생각했다. 구정 공세는 군사적이면서,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외교적인 활동이었다. 우리는 적을 섬멸할 수는 없지만 미군의 싸울 의지는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구정 공세의 이유이다.“
* 또 어떤 측면에서는 미국과 월남 정규군 183만 명이 52만 명의 월맹군을 쉽게 이길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은 현실을 크게 잘못 읽은 것이었다. 보구엔 지압은 자신들의 정규군보다 3~5배 정도 많은 게릴라들과 우호적인 주민들을 우군으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 결국, 보구엔 지압은 구정 공세로 상당한 인명을 잃었지만 미국인들의 전쟁 의지를 꺾는 성과를 거둠으로써 목적을 달성했다. 미국은 월남 정권 보호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월맹군의 공세를 정규전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8년의 장기전에 마침표를 찍고 1973년 완전 철수했다.
정주영 - 한국
정주영의 초심(初心)
* 강원도 통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정주영은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소(牛) 판 돈 70원을 들고 네 번째 가출을 시도해 서울로 올라왔다. “농촌에 주저앉아 살면 아버지와 똑같이 살아야 하고, 고된 노동에 비해 농사일의 소득이 너무 적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인천항 부두 하역 노동자, 농가 품앗이 일꾼, 공자장 인부, 엿공장 잔심부름꾼 등을 하다 쌀가게 배달원으로 취직했다.
* 우리 나이로 스무 살 때인 1934년 월급 주는 첫 직장에 취직했다. 그런데 자전거 쌀 배달을 하다가 넘어져 자전거를 망가뜨리고 쌀과 팥 등을 길바닥에 모두 다 쏟아버리는 대형 사고를 쳤다. 정주영은 그러나 그 날 당장 선배 배달꾼을 졸라 자전거 쌀 배달의 기술과 요령을 배웠다. 그리고 밤부터 사흘 동안 내리 거의 밤잠을 안 자고 연습을 했다. 그리고 밤부터 사흘 동안 내리 거의 밤잠을 안 자고 연습을 했다. 얼마 안 가 정주영은 한꺼번에 쌀 두 가마를 싣고도 빨리 달리는 능숙한 자전거 쌀 배달꾼이 되었다. 그로 인해 처음엔 쌀 한 가마였던 월급은 금방 두 가마가 됐고, 나중에 세 가마까지 늘었다.
* 정주영은 이때부터 무슨 일이든지 하고 있는 일에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쏟아 부으면 길이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신념을 굳혔다. 자전거 쌀 배달꾼 연습 때의 집중력과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초심(初心)을 잊지 않고 ‘요만큼’, ‘이만큼’. ‘요정도’ 같은 대충대충주의와는 담을 쌓기로 했다. 이것이 그를 성공으로 이끈 첫 번째 열쇠였다.
* 정주영은 1958년 서울 인왕산 아래 청운동에 지상 2층 양옥으로 지은 집에서 줄곧 살았다. 자택 1층 응접실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써준 ‘청렴근’과 ‘일근천하무난사’라는 글귀가 각각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하루 부지런하면 하룻밤을 편히 잠들 수 있고, 1년 2년 10년…평생을 부지런하게 생활하면 누구나 크나큰 발전을 볼 수 있다. 부지런만 하면 게으른 이보다 몇 십 배의 일을 해낼 수 있고, 몇 백 배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에 대해 CWPC – 2011년 3월 2주차 서평 [내 인생을 바꾸는 5분 생각] (권경자 지음, 원앤원북스 출판사, 2010.)에서 조금 더 살펴보자.
노력만한 지름길은 없다
근면이야말로 최고의 재산이다 -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
* 정주영 회장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라는 글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라는 뜻이다. 이 글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세상을 뜨기 전 뤼순 감옥에서 남긴 글로, 원래는 뒤에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백 번 참으면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라는 문장이 이어지지만, 정주영 회장은 앞 문장인 일근천하무난사를 집 안에 걸어두고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 한 일, 부지런할 근, 하늘 천, 아래 하, 없을 무, 어려울 난, 일 사로 이루어진 이 글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시련과 마주할 때마다 정주영 회장에게 힘이 되어준 글귀가 아닌가 싶다.
*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귀양 가 있을 때였다. 중죄인 정약용의 첫 제자는 황상(黃裳)이라는 열다섯 살 난 소년이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7일째, 정약용은 황상에게 문학과 역사를 공부할 것을 권한다.
* 그러자 황상은 자신은 둔하고 앞뒤가 꽉 막혔으며 답답한 사람이어서 불가능하다고 사양한다. 그 말을 들은 정약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病痛)이 3가지 있는데, 첫째는 외우는데 민첩한 사람으로 이런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는 글짓는 데 빠른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셋째는 깨달음이 빠른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거친 것이 폐단이다. 다행히 네게는 이런 것이 없구나. 둔하지만 계속 파고드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꿇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며, 답답한데도 연마하면 그 빛이 빛난다. 파고드는 방법도 부지런함이요, 뚫는 방법도 부지런함이며 닦는 방법도 부지런함이다. 평생 부지런함을 잊지 말아라.
* 정약용의 권학문(勸學文)이다. 황상은 스승의 말씀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고 풍자한 다산의 시풍을 충실하게 계승해, 추사 김정희 형제가 서문을 쓴 『치원유고(巵園遺稿)』라는 문집까지 남기는 등 정약용 제자 중 최고의 시인이 되었다.
* 그는 김정희에게서 지우(知遇)로 대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두보(杜甫)를 골수(骨髓)로 하고 한유(韓愈)를 근골(筋骨)로 했다는 평까지 듣게 된다. 그의 부지런함이 이룬 업적이며 그럴 알아본 정약용의 안목이 있었다.
“겨울에도 새벽에 일어나 목욕하고 찬물에 씻는다”
* 현대그룹의 사훈 가운데 ‘근면’을 첫 번째로 정했을 정도로 ‘근면’의 힘을 믿었고, 쉼 없이 ‘근면 예찬론’을 폈다.
“대성의 비결이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똑같이 10시간 일하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할 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사람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 중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의 성공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해야 많이 움직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노력해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부지런함은 자기 인생에 대한 성실성이다. 나는 부지런하지 않는 사람은 일단 신용하지 않는다.”
* 정주영은 “동지섣달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목욕을 하고 반드시 찬물에 씻는다”고 말했다. 일찍 일어나 바쁘게 움직이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새벽형 경영자’였다.
“시간이란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죄는 나에게 있는 것이니라.” 영국 옥스퍼드대의 올 소울즈 칼리지(All Souls college)의 해시계에 새겨진 이 말은 시간의 중요성을 웅변한다. 영원불명의 세상 진리 가운데서 단지 시간만이 우리들이 자유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수명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한 번 지내보내면 아무리 해도 다시는 돌이켜 두 번 다시 마주할 수 없다.“
담담하게 치열하게 ‘자기 한계’에 도전하라
* 정주영도 비슷한 정신적 기둥을 품고 있다. ‘담담한 마음’이라는 좌우명이다. 1977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현장에 그가 세운 ‘담담한 마음’ 탑에는 淡淡한 마음을 가집시다. 淡淡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고 총명하게 만들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 ‘담담한 마음’은 정주영의 마음 수련법이다. 그는 ‘담담’이란 두 글자를 꼭 한자로 썼다. ‘물 수’ 변에 ‘불 화’ 자가 두 개 들어있는 ‘맑을 淡(담)’이라는 글자는 불처럼 타오르는 성깔을 물로 가라앉히려는 과정에서의 극기를 의미한다. 색깔로는 묽고 연하고, 맛으로는 싱거운 상태이다. 그가 집무실에 액자로 걸어두었던 ‘달관’이라는 글자와도 통한다.
- 정주영은 ‘담담한 마음’에 대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빈 마음이며, 조용한 가운데 치열하게 자기 한계에 도전하는 마음”이라고 풀이했다. 담담한 마음을 가지면 태도가 의연해지고 당당해진다고 했다. 이를 추구한 정주영의 모습에서 구도자의 자세가 엿보인다. 정주영은 “‘담담한 마음’은 도리를 알고 가치를 아는 마음이며 융통자재의 평상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숱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던 배경인 것이다.
* ‘정주영 식 혁신’의 위대함과 가치가 여기에 있다. 성공을 하거나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 무리수나 편법을 쓰지 않고 본연의 평정상태인 ‘담담한 마음’에 충실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72세 때 현대그룹 사보 <현대사우>(1986년 7월호)에 기고한 ‘행복한 생애의 길’의 일부이다.
- “성공은 분투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바른 마음으로 할 일을 생각하고, 바른 마음으로 나날의 일을 실행하면 반드시 정상에 다다를 것이다. 부지런해야 한다. 淡淡(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마음을 얻어 성공한 서울 올림픽 유치
* 1981년 9월 하순, 열흘 동안 바덴바덴(Baden-Baden·독일 남서부에 있는 소도시)에서 벌인 서울올림픽 유치활동도 그런 경우였다. 김택수 IOC(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을 비롯한 한국측 유치단원 대부분이 “서울은(총 82표 가운데) 3표를 얻어 일본 나고야에 참패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내부적으로는 깊은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정주영은 달랐다. “반드시 유치”라는 목표에 한 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발버둥쳤다. 유치도시 결정권을 쥔 IOC 위원들의 성향을 한 사람 한사람씩 다 파악한 다음 그들을 상대로 총력 로비를 폈다.
- 나고야시(市)는 IOC 위원 부부에게 비싼 최고급 일제 손목시계를 선물하여 환심을 사려했다. 그러자 정주영은 정성스런 꽃바구니 배달로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사로잡는데 주력했다. 바덴바덴 시내 꽃집에 있던 꽃이 모두 동나자, 정주영 팀은 인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꽃밭은 통째로 사서 IOC 총회 마지막 날까지 매일 싱싱한 꽃을 호텔 방에 보냈다. 결과는 52대 27! 모두의 예상을 깬 서울의 완승(完勝)이었다.
‘혁신의 백미’…정주영 공법과 주베일항 공사
* 1976년 2월 정주영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입찰에 뛰어들어 9개 선진국 기업을 물리치고 일감을 따냈을 때다. 일감 수주부터 기적이었다. 공사 금액 9억3천만 달러는 당시 환율로 4600억원인데, 우리나라 그 해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 공사는 콘크리트 소요량만 5톤 트럭으로 연20만대 분이 필요하고, 철강자재는 1만톤짜리 선박 12척이 필요한 엄청난 규모였다. 게다가 정주영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내건 42개월의 공사 기간을 무조건 6개월 단축하겠다고 공개 약속한 상태였다.
- 그 해 7월 공사에 착공했지만 작업 난이도가 높은 데다 이 분야 공사 경험이 전무한 현대로선 진척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발주처와 감독관청은 사사건건 트집 잡았다. 지연작전을 폈다. 현대의 기술력이 의심스런 마당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을 벌 수 있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 ‘시간이 돈’인 상황에서 정주영은 “모든 자재를 한국에서 만들어 송출한다”고 선언했다. 울산조선소에서 모든 기자재를 만들어 세계 최대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동남아와 인도양을 거쳐 걸프 만까지 대형 바지선으로 운반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울산에서 주베일까지는 총 1만2천km로 경부고속도로를 왕복 15번 운항해야 하는 거리다. 모두가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대형 해상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 정주영은 그러나 보험 가입을 거부하고 태풍으로 사고가 나도 철 구조물이 바다 위에 떠 있도록 하는 공법을 구상했다. 또 울산 조선소에 지시해 주야로 작업해 1만 마력의 터그보트 3척, 대형 1만5800톤급 바지선 3척, 5천톤급 바지선 3척을 최단시일에 만들도록 했다.
- 오일쇼크로 선박 건조 일거리가 없던 울산조선소는 주베일 산업항에 들어갈 기자재를 만드느라 분주해졌다. 이렇게 만든 기자재를 바지선이 평균 한 달에 1번씩 총 19번 운항했는데 딱 2번의 가벼운 사고만 있었다. 부제일 현장 공사팀은 수심 30km에서 중량 500톤이 넘는 해상 자켓을 5cm 이내의 오차로 완벽하게 끼워 넣는데 성공했다. 공사는 계약 기간보다 10개월 앞당긴 32개월 만에 모두 마쳤다.
서산 간척지 사업
* 7년 후 정주영은 다른 기적에 도전했다. 1983년 말 충남 서산에 대규모 간척지 조성을 마무리하던 때였다. 정주영은 마지막 남은 A지구 물막이 공사를 앞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 총 6400m에 이르는 방조제 가운데 270m를 남겨 높고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홍수 등으로 위험 수위 때 한강 유속이 초속 6m인데, 이곳의 유속은 초속 8m로 승용차만한 바윗덩어리를 던져 넣어도 금세 물살에 쓸려 내려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유속이 워낙 빨라 A지구 공사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정주영은 고심을 거듭했다. 이번에도 시간을 끌수록 돈과 인력이 낭비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묘수가 번쩍 떠올랐다. 해체해서 고철로 쓰려고 30억원에 사다가 울산에 정박해 놓고 있던 노후된 스웨덴 유조선 ‘워터베이호’를 끌어와 가라앉혀 물줄기를 맞가는 것이었다. 즉시 현대중공업, 현대정공, 현대상선 기술진에게 폭 45m, 높이 27m, 길이 322m의 23만톤급 고철 유조선을 물막이 공사 구간에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토록 했다.
- 이 아이디어도 적중했다. 낡은 유조선을 바다에 가라앉힘으로써 남은 물막이 공사를 완성해 1억 5537만m²(약 4700만 평)의 땅이 새 국토 면적으로 추가됐다. 이는 서울 여의도 전체의 33배에 달했다. 290억원의 공사비도 절약할 수 있었다. ‘정주영 공법’으로 불린 이 공법은 <뉴스위크(Newsweek)>와 <타임(TIME)>지에 소개돼 세계 각국의 찬사를 받았다.
- 정주영은 이처럼 예상 못한 상황이 벌어져도 놀라거나 움츠러들지 않았다. 그는 ‘처변불경(처지가 변해도 놀라지 않는다)’의 달인이었다. 그때마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활로를 열었다. 그가 내린 처방은 신기하게도 모두 적중했다. 일을 달성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믿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반드시 된다’는 확인 90%에 ‘반드시 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로 완벽한 100%를 채우지, 안 될 수도 있다는 회의나 불안은 단 1%도 끼워 넣지 않는다.”
* 정주영은 “살아가면서 항상 모든 ‘그때그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일생을 좌우한다”며 ‘유지자사경성’을 마음의 좌표로 삼았다. ‘뜻이 강하고 굳은 사람은 어떤 난관에 봉착해도 기어코 자신이 마음먹은 일을 성취한다’는 의미다.
-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몇 차례 호된 시련은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에 좌절해서는 안 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시련은 우리를 보다 굳세고 현명하게 성장시킨다.”
徐評曰
* “목표가 너무 낮지 않은가? 평범한 삶에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손정의(1957~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그룹 사장(CEO) 겸 회장이 2012년 10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혁신의 시작점은 무엇일까? 바로 현실과 미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가끔 멈추어 목표와 목표 수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경영에 필요한 한마디
* 노자는 <도덕경>에서 ‘화복의복(禍福倚伏)’이라고 했다. “화와 복이 서로 기대어 엎드려 있다”는 말로, “화(禍) 가운데 복이 있고 복(福) 가운데 화가 있다”는 뜻이다.
* “고통스러운 시련이야말로 우리들의 인격을 단련시켜 자기 수양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우리들의 힘은 역경에서 발휘된다” - 19세기 영국의 문필가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는 저서 <자조론(Self Help)>
멋진 사례와 재미있는 통계
* 정주영은 회고록<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모했지만 그 무모함이 부른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뛰어넘고 쳐부수면서 우리는 산 공부를 해가며 그만큼 철저하게 강인해졌다. <대학>에 ‘치지재격물’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지식으로 올바른 앎에 이르자면, 사물에 직접 부딪혀 그 속에 있는 가치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참다운 지식은 직접 부딪혀 체험으로 얻는 것이며, 그래야만 가치를 아는 법이다.
- 기업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정주영의 가장 큰 강점이자 성공 비결은 주저하지 않고 부딪치는 과감한 행동력이다.
* 정주영은 <논어>의 학정 편에 나오는 ‘군자불기’라는 말을 좋아했다. ‘군자란 한 그릇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어떤 그릇도 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수시로 세모꼴이나 네모꼴이 되어 어떤 자리에 놓여도 그 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만 자기가 잘 아는 한 분야의 고정 관념에 빠지지 않고 위기나 난관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에 던져야 할 질문
나는, 우리 조직은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나는, 우리 조직은 리카싱처럼 업무시간의 50%이상을 미래 준비에 쓰고 있는가? (최고 경영자인 리카싱은 70-80%)
나는, 우리 정부는 정주영의 아산방조제 공사처럼 혁신적인 전략을 지원하고 있는가?
書評家 徐珍榮(2020): 서울대학교 경영학 박사,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자의누리 경영연구원/유경서원 원장(Since 1997)학자/교수/저술가/칼럼니스트CEO 서평 발행인(900여권 CEO서평)/CEO 독서모임 진행CEO 카운슬러/경영전략․인사평가 컨설턴트저서 : 서진영의 KBS 시사고전, 하늘을 품어라 등자의누리:sirh@centerworld.com/www.centerworld.com/ www.cwpc.org/유튜브–서평TV : www.youtube.com/sirhj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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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시사고전 I, II ,III] (서진영, 자의누리, 2017) CWPC – 2015년 1월 9월 1주차, 2017년 5월 3주차, 2018년 1월 3주차 서평)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김성회 지음, 북스톤, 2016. CWPC – 2017년 2월 3주차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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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목차
머리말
1. 손정의
2. 도널드 트럼프
3. 마오쩌둥
4. 리카싱
5. 보구엔 지압
6. 이순신
7. 정주영
주석&참고문헌
책을 읽으실 때
* 앞서 있는 이들의 혁신을 통해 현재 우리의 혁신방법을 생각하시며 읽으시면 좋습니다.
* 참고 자료
- 가독성 : 보통
- 중점 연구 챕터 : 7장
- 독3, 시3, 논4, 자료4.
* 주제어 : #손정의 #보구엔 지압 #리카싱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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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評copyright@Drs.SIRH&CWPC: CENTERWORLD PRESTIGE CLUB 2020
도널드 트럼프
* 미국 건국 후 취임한 45명의 대통령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1946~)만큼 호감, 비호감이 엇갈리고 많은 구설수를 낳은 이는 드물다. 이것은 아마도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가 ‘최고의 질서 파괴자(Disruptor-in-chef)’라고 명명한 것처럼, 그가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부여된 고정 관념과 기존 질서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총체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게 큰 이유로 보인다.
- 먼저, 트럼프는 2016년 당시 45억 달러(약 5조4천억원)의 개인 재산을 가진 <포브스> 기준 세계 324위 부자이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억만장자가 백악관 주인이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트럼프는 우리 나이로 71세이던 2016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만 70년 동안 연방은 물론 주, 시 단위의 의원이나, 시장, 주지사, 장·차관 같은 어떤 공직 경력도 없다. 군 복무도 하지 않았다. 생애 첫 번째 공직이 대통령인 것이다.
- 평생 부동산개발 사업에 몸담은 트럼프는 세계 각지에 42개의 빌딩을 포함한 부동산, 12개의 호텔, 17개의 골프장 등을 갖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법인은 모두 489여 개(2015년 기준)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는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 카지노를 세웠다가 도산하는 등 4차례 파산했다.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고, 9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채무를 협상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트럼프가 맹탕이 아니라 실력과 근성 있는 인물임을 시사한다.
- 트럼프는 2006년 8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독자들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10대 기업인’중 한 명으로 그를 선정했다. 키 190cm 거구인 트럼프는 사생활도 유별나다.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했는데 부인들은 모두 배우나 모델 출신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 젊은 여성을 배우자로 골랐으며, 여성 편력도 화려하고 화끈했다. 일례로, 24살 연하의 현 부인인 멜라니아와의 결혼식(2005년 1월) 경비로만 4200만 달러(약 500억원)을 썼고, 그는 멜라니아에게 1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약 150만 달러 약 18억원)를 선물했다.
- 2004년부터 2015년까지는 NBC 방송의 ‘어프렌티스(Apprentice·견습생)’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약했다. 이 프로는 참가자들을 상대로 여러 시험을 거쳐 트럼프가 운영하는 회사 중 한 곳을 경영하는 권리와 연봉 25만 달러(약 3억원)를 우승자에게 주는 일종의 직업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트럼프는 후보자들을 1명씩 해고하며 마지막 회에 한 명만 남겼는데, 그가 매회 외친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말은 국내외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이 프로그램 출연료로만 2억 달러(약 2400억원)를 번 트럼프는 ‘시청률 상승제조기’라 불릴 정도의 유명 인사(Celebrity)가 됐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질서 파괴자’
* 이렇게만 보면 트럼프에 대해 부동산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고 화류계에도 발이 넓어 즐기며 살아온 잘 나가는 백인 속물 부자 정도로 여기서 쉽다. 그런데 그에겐 특별한 측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신의 사업이란 좁은 세계에만 갇혀 지내지 않고 더 넓고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고민해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부단히 혁신하는 삶을 살아왔다. 단적인 사례가, 풍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알찬 그의 저술 활동이다.
- 트럼프는 우리 나이로 42세 때인 1987년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낸 이후 70세 때인 2015년 <불구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 : 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까지 28년 간 19권의 저서를 펴냈다.
- 특히 그의 첫 번째 저서인 <거래의 기술>은 13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고, 48주 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는데, 미국에서만 최소 500만부 넘게 팔렸다. 이 책을 통해 트럼프는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이자 협상가라는 평판을 굳혔다. 그의 대선 출사표이자 공약집인 <불구가 된 미국>도 100만부 넘게 팔렸다.
19권 저서 낸 ‘별종 인간’
* 전 세계의 예상을 깬 놀라운 변신이었다. 그는 취임 후에는 40만 달러(약 4억6천만원)의 연봉을 받지 않고 전액 기부하고 있다. 공식 생사 건배도 와인 대신 다이어트 콜라(diet coke)로 한다. 트럼프가 역대 대통령이나 기성 정치인과 판이한 ‘별종인간’임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 2012년 처음 트위터를 시작한 트럼프는 취임 전에도 음모론과 거짓 정보, 극단적 콘텐츠 등을 퍼뜨려 정치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해 그것을 자주 이용했다.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는 일부 예상도 있었지만 그는 취임 첫날부터 트위터로 인사했고, 3일 만에 정적을 공격하는 트윗을 날려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에는 라이벌들과 ‘밀월 관계’를 유지한다는 미국 정가의 관행을 깬 것이다.
- 첫 6개월 하루 평균 5.23건이던 그의 트윗 건수는 2019년 상반기 9.46건으로 늘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논의가 불거진 2019년 10월 둘째 주에는 하루 평균 38건의 트윗을 날렸고 같은 해 12월 12일에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115번에 걸쳐 트윗과 리트윗을 했다. 가히 ‘트위터 총사령관(Tweeter-in-chef)’ 수준이다. 2018년 5천만 명이던 그의 트윗 팔로우는 1년 만에 6600만 명으로 급증했다.
* 트럼프는 보좌진이 없는 오전 6시부터 오전 10시 사이에 하루 전체 트윗의 절반 정도를 올린다. 트윗으로 국무·국방·법무장관 등 핵심 각료 파면 사실을 알리고, 야당·언론매체에 대한 공격은 물론 동맹국에 대한 불만 표출과, 다루기 힘든 관료들을 공개적으로 창피주기도 한다. 댓글을 유심히 살피며 트위터를 사설 여론 조사 기관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하루 115건 ‘폭풍 트윗’의 경쟁력
* 트럼프가 취임한 2017년 1월 20일부터 2019년 10월 15일까지 올린 트윗 건수는 1만1390건에 달한다.
- 그는 “트위터는 나에게 있어서 소통하는 가장 현대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주로 정책의 결과나 결론을 알리는 용도로 트위터를 썼다. 그러나 트럼프는 “나는 어떤 사안을 신중하게 고민한 뒤 트위터 글을 올리는 게 아니라 내 메시지를 모든 곳에 즉시 알려지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트윗이란 소셜미디어로 고도의 국내 장치·외교 행위를 하는 동시에 인사, 인기 관리 등도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트위터광’이 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 “성과를 내리면 분명한 관점으로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메시지를 퍼트리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특수 이익집단들이 원하는 결과를 돈으로 얻어내고 우리를 갈라놓지 못한다. (중략) 나는 언론이 가진 좌파적 편견을 이겨내고 국민들의 마음에 직접 호소하는데 성공했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 자신이 국민들 및 외국과 직접 소통해 영향력을 극대화하며 정국 장악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본능적 욕구와 더불어 주류 미디어와 이익집단 등에 대한 불신이 그의 심중에 깔려있다. 트럼프는 실제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ABC, CNN 같은 주류 미디어를 딥 스테이트(Deep state·선거로 집권한 정부<state>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국가 운영을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라는 뜻’)라고 부르며 비난하고 있다.
* 다시 말해 어느 나라이든 대통령이나 국가 원수가 직접 그것도 매일 하루에 여러 차례 ‘트윗 폭풍’을 하려면 자신감과 실력, 즉 내공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남다른 측면이 많다. 그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나 편지를 쓸 때, 점심 메뉴를 주문할 때 등 모든 일상 업무에 나는 본론만 압축하는 기술을 적용했다”며 “사람들이 문장을 가다듬고 있을 동안 나는 책 한 권을 완성한다. 나는 계약을 맺기도 전에 머릿속에 모든 진행을 마친다”고 했다. 경쟁자보다 훨씬 빨리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압축적으로 정리하는 등 시간 · 속도와 싸우는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다.
* 트럼프는 말한다. “무엇을 말하든지 짧게 빨리 본론만 얘기해야 한다. 나는 3분 안에 모든 걸 보고하는 훈련을 해왔다. 5분 이내로 프리젠테이션할 수 있도록 훈련하라. 끊임없이 자신에게 ‘얼마나 더 간결해질 수 있을까?’를 되물으며 자신과 경쟁하라.”
중국·동맹관계·이민…‘싸움 방식’ 대혁신
* 정재호 서울대 미중관계연구센터 소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특징에 대해 “한 마디로 ‘CIA 정부’”라며 “뛰어난 싸움꾼인 트럼프가 1980년대 레이건 정권 이후 대외 정책에서 눈에 띠게 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CIA 정부’란 트럼프 국내외 정책의 핵심 과제의 ‘중국(China), 이민(Immigration), 동맹(Alliance)’ 세 개의 머리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 트럼프는 먼저 중국에 대해 2018년 7월 대미 수출품 500억 달러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무역 전쟁을 점화해 기술 전쟁, 환율 전쟁으로 전선을 넓혔다. 또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대통령 선거 공약 1호’로 중남미와 미국 국경에 길이 509마일(약 819km)에 달하는 장벽 건설을 내걸었다. 그는 국방 예산을 전용하면서까지 장벽 건설을 강행한다.
- ‘세계의 경찰’이란 명분보다 ‘돈’을 앞세우며 전통 동맹국인 유럽과 한국, 일본에 대해 대폭적인 방위비 인상과 책임 있는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더 이상 ‘세계의 호구’여서는 안 된다”
* 그는 4년 만에 국가 부채가 4조 달러나 급증할 정도로 미국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규정했다. 직전 8년 동안 미국을 이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명분에 사로잡힌 채 무능한 협상력으로 미국의 국가 이익을 못 챙겼다고 비판한다. 이로 인해 지금 미국은 중국에 추월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세계 각국의 호구(어수룩하게 이용만 당하는 사람 또는 국가)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가장 위협적인 중국을 다루는데 실패했다고 트럼프는 강조한다.
- “중국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막강하다. 중국의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지 그리고 위력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큰 손해를 입힐지 가늠하기 어렵다. 2027년쯤이면 중국이 미국이 제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중력)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은 중국 때문에 240만 개의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 경제는 매년 9~10%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미국의 전례 없는 하락세를 경험했다. 2011년 1분기에만 중국 경제는 9.7%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미국 경제는 1.9%에 그쳤다.
- 트럼프는 이어서 말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만면에 웃음을 피고 우리를 대하고 있으나 중국은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중국을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중략) 미국이 다시 1등 국가가 되려면 더는 우리를 가지고 놀지 못하도록 중국에 강경하게 나갈 수 있는 사람, 또 중국의 술수에 휘둘리지 않는 단호하고도 능수능란한 협상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
- 1980년 미국의 11%에 불과했던 중국의 경제력(GDP기준)이 2017년에 66%로 치솟자, 트럼프는 이듬해 7월 대(對)중국 무역·경제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중동 국가들과 세계 12위 경제대국인 한국에 대해서도 미국이 당당한 목소리를 내며 세게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은 다른 국가 상대로 국가 이익 챙겨야”
* “중국은 마치 샌드백을 두드리듯 매일 우리를 두들겨 패고, OPEC은 우리 지갑을 탈탈 털어간다.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대체 대통령이란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 트럼프는 강조한다. “대통령은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 협상가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른 국가를 상대로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 일종의 협상 중개인의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의 임무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가 번성하는 환경을 만들고,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유능한 협상가가 되어 국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거래를 성사시킨다면 미국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들과 정신과의사들 가운데는 트럼프를 ‘병적인 나르시시스트’, ‘억제되지 않는 극단적 현재 쾌락주의자’, ‘인지 장애자’라고 혹평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애런 제임스(Aron James)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트럼프는 왕성하고 휘황찬란하게 모욕을 해댄다. 트럼프 본인도 인정하듯이 나오는 대로 말하는 대단한 허풍쟁이(Bullshitter)다“고 했다. 그가 국가 간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일부러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을 구사한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의 발언들을 보면 그는 일시적인 감정이나 충동에 따라 ‘CIA’정책을 펴거나 협상을 하는 게 아니다. 일관된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게 분명하다. 트럼프는 말한다.
- “우리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고, 미국을 더 안전하고 더 강하고 더 자유로운 국가로 만들고, 상대국이 아니라 우리 조국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이 필요하다.
- 이 말은 ‘대통령 트럼프’가 하는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21세기 미국의 부흥과 국가 이익, 즉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목표에 맞춰져 있다는 얘기이다. 트럼프는 이를 위해 50여 년간 비즈니스 현장 경험과 독서로 체득한 협상술과 기만술을 수시로 구사한다. 당연히 막말이나 허세, 거짓말도 한다. 이런 행태를 놓고 트럼프를 마음껏 경멸하고 조롱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의 실체를 제대로 짚은 것은 아니다.
- 2019년 10월 16일로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1000일을 맞았다. 임기(4년)의 70% 정도를 보낸 그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평가는 어떨까? 트럼프는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미국 역사상 세 번째 대통령이 됐지만 국정 수행에선 호평받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 상황이 양호해서다. 임기 3년째인 2019년 미국 실업률은 1969년 이후 5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고, 주가도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3년 내내 40%~45% 콘크리트 지지율 유지
* 인종차별·여성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고, 기성 주류 미디어를 ‘국민의 적(敵)’으로 공격하는데도 백인 노동자들을 주축으로 한 핵심 지지층은 오히려 트럼프에게 열광하고 있다. 어떤 약재에도 트럼프가 40~45%대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2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트럼프 신봉자’들이 미국 안에 상당히 많음을 증명한다. 미국 주류 언론 매체가 트럼프에 대해 경멸과 조롱 위주 보도를 하는데 비해 현장의 실상은 크게 다르다는 얘기다.
* 트럼프는 뉴욕 포덤대를 거쳐 세계 최고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Wharton School of Business)을 졸업했다. 그의 발언과 저서, 행적을 추적해보면 트럼프는 뛰어난 지적 능력과 분명한 세계관과 전략적 사과를 갖추고 있다. 트럼프는 중고교 시절 5년을 뉴욕군사학교(New York Militart Academy·약칭 NYMA)에서 보냈다. 웨스트포인트(WestPoint·미국 육군사관학교)근처에 있는 NYMA는 기숙형 사립학교로 규율이 매우 엄격한 곳이다.
* 1959년 만 13세 때 이 학교에 입학한 그는 상급반으로 올라가서 야구팀 주장을 맡을 정도로 잘 적응했다. 그는 ”NYMA에서 규율과 투쟁적인 성격을 실행으로 옮기는 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1960년대 초반 가혹한 신고식과 폭력이 난무하던 군사학교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성적도 우수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암시한다.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나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보다 거치고 경쟁적인 분위기에 단련된 ‘터프 가이(tough guy)’이며, ‘승리’에 대한 욕망이 강하며 잡초 같은 생존력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다.
술·담배 않는 대신 독서·사색
* 유약한 성격에 술, 담배에 젖어 살다가 43세에 세상을 떠난 큰 형(프레디 트럼프)의 좌절은 트럼프에게 또 다른 의미에서 교훈을 주었다. 그 영향으로 트럼프는 지금까지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격적이고 단호한 아이였으며, 자립심이 강했고 항상 리더로 군림하려고 했던 트럼프는 아버지를 따라 공사 현장을 다니면서 부동산 개발 관련 일을 배웠다. 1968년 대학 졸업 후 부동산 임대료를 수금하는 일로 세상 물정을 익힌 그는 1971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업을 떠맡았다. 트럼프가 한 첫 번 째 일은 아버지가 벌여놓은 사업체들을 ‘트럼프 오거니제이션(The Trump Organization)’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 이때 트럼프는 하루에 3~4시간만 자면서 일에 몰두했다고 한다, 또 바쁜 일정 가운데 짬을 내 ‘자기 관리’에 열심이었다. 그는 주로 아침 출근 전과 퇴근 후 시간을 활용했다.
- “나는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그때부터 2~3시간 동안 지역, 전국, 국제지를 가리지 않고 온갖 종류의 신문과 잡지를 읽는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뒤에는 책, 보통은 자서전을 읽는데 이따금씩은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즐겨 읽는다. 소크라테스의 책을 특히 즐겨본다.”
- “나는 매우 바쁜 삶을 살지만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마음의 평정을 위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나눈 내 삶의 미션이 매일 최상의 한계까지 능력을 발휘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 트럼프는 출근 전에 읽고 들은 정보들을 재빨리 머릿속으로 취합한 후 이를 현재 사업이나 앞으로 진행할 계약에 적용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매일 밤 10시만 되면 침대에 들어 보통 새벽 1시까지 책을 읽었다고 한다. 트럼프는 “하루 종일 새로운 정보를 업데이트한다.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정보가 중요하다. 많이 아는 자가 주도권을 차지한다. 두뇌의 힘은 위기 속에서 강력한 지렛대 작용을 한다”고 강조한다.
- 그는 트럼프 타워를 완공한 다음에는 집과 사무실이 한 건물 안에 있어 출퇴근 시간이나 교통 체증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점을 활용해 사색과 독서에 힘썼다. “일주일에 일정 시간을 고전문학이나 역사 등 일상적인 범위 밖의 것을 탐구하는데 투자하라. (중략) 세계 정세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노력이며, 이런 공부는 창조적인 사고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고전문학·세계정세에 관심 가져라”
* 이런 노력으로 통찰력과 선견지명을 갖출 수 있게 됐다고 그는 밝혔다. 트럼프는 “선견지명은 가장 무서운 힘이다. 나는 ‘최고의 시력은 통찰력이다’는 맬콤 포브스(Malcolm Forbes·1919~1990·<포브스>창업자 겸 CEO)의 말을 신봉한다”며 자신의 선견지명이 인정받은 사례 두 가지를 소개했다.
- “2006년 10월 12일, 로버트 기요사키와 함께 쓴 <부자(Why We Want You to be Rich : Two Men-One Message>의 출간 파티가 트럼프 타워에서 열렸다. 마침 2006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나는 2005년 <뉴욕타임스>에 존 업다이크, 필립 로스와 나란히 오르한 파묵(Orhan Pamuk·1952~·터키의 소설가로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을 매우 재능있고 뛰어난 작가라고 평가했었다. 그날 사람들이 그 사실을 기억하고 내가 노벨상 심사위원단보다 먼저 수상자를 알아냈다며 축복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일로 나는 선견지명을 가졌다는 칭찬을 듣게 됐다.”
- “2008년 9월 중순, 월스트리트에서는 유례없는 사건(미국 글로벌 금융위기)이 벌어졌다. 당시 닐 카부토(Neil Cavuto·1958~FOX 뉴스의 경제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가 나에게 그 사태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시장 폭락이 생기기 8개월 전에 나는 이미 그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런 날이 올 것을 예견했고, 닐은 당시 방송 내용을 자료화면으로 준비했다. 나는 8개월 전부터 미국 경제가 힘든 시기를 맞게 될 것임을 내다보고 있었다.”
“완벽한 준비와 분석 마친 다음 싸운다”
* 트럼프는 자신이 쓴 여러 책에서 신규 투자나 사업을 하면서 얻은 교훈으로 ‘철저한 사전 준비’를 강하게 주문한다. “하룻밤 새에 성공한 사람은 거의 없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중략) 거기서 나는 자연스럽게 사전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 사전 준비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과외 코스가 아니라 필수과정이다.
* 그는 대중 연설도 치밀하게 준비한다. 청중의 수준을 분석하고 수준에 맞는 사례나 예시를 들어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한다. 어휘도 단순하고 직설적인 것만 골라 알아듣기 쉽게 한다. 청중을 매료시키는 좋은 연설을 하기 위해 트럼프는 대중 연설의 11가지 원칙을 세워 놓고 있다.
- 대통령 후보 출마도 오랜 기간 ‘계산’과 ‘준비’ 끝에 결심했다. 1988년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쇼’에 출연한 트럼프는 윈프리로부터 대통령 선거 출마 가능성을 질문 받았다. 대답은 이랬다. “(제가 출마하면)당선될 것 같아요. 지는 것은 시작도 하지 않아요. 평생 시작해서 진 것이 없어요. 만일 시작하기로 마음먹으면 나는 승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생각합니다.”
- 언제일지는 몰라도 성공 가능성이 무르익었다고 판단될 때 출마 할 것이며, 그때는 반드시 당선되도록 하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정가에서 1987년부터 2012년까지 대통령 물망에 계속 오르내렸다. 스스로도 출마 후 성공 여부를 저울질했다. 그러다가 2015년 대선 출마 선언 전, 그는 10억원을 들여 대선 출마 승패 여부에 대한 조사를 했고, 승산이 높다는 결론이 나오자 행동으로 옮겼다.
https://www.youtube.com/watch?v=6BJYbn4MppM제목: Trump tells Oprah his political views in 1988종류: [방송] 오프라 윈프리쇼검색어: oprah winfrey trump |
* 언제일지는 몰라도 성공 가능성이 무르익었다고 판단될 때 출마 할 것이며, 그때는 반드시 당선되도록 하겠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정가에서 1987년부터 2012년까지 대통령 물망에 계속 오르내렸다. 스스로도 출마 후 성공 여부를 저울질했다. 그러다가 2015년 대선 출마 선언 전, 그는 10억원을 들여 대선 출마 승패 여부에 대한 조사를 했고, 승산이 높다는 결론이 나오자 행동으로 옮겼다.
*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트럼프는 지금도 기독교 신자이다. 그래선지 “지금까지 쓰여진 많은 책 가운데 단언 가장 중요한 책은 ‘성경(Bible)’이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가 애독서로 꼽으며 미국인들에게 읽기를 권하는 책은 다르다. 2500여 년 전 중국의 손무가 써서 나폴레옹과 더글러스 맥아더 같은 군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손자병법(The Art of War)>이다. 그는 2010년 낸 저서 <최선을 다한다 하지 말고 반드시 해내겠다 말하라(Think like a Champion)>에서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추천하고자 하는 책은 손무의 <손자병법>이다. 이 책은 경영 전략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기원전 6세기에 쓰여진 군사병법 책이지만 몇 세기 동안 수많은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책은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으므로 반드시 읽어보라. 이와 유사한 책 중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e)>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리더십과 권력은 부정적인 면이 있으며, 윤리와 신뢰라는 중요한 가치들을 간과하고 있다. 따라서 <손자병법>을 요체는 두 가지로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과 ‘전쟁은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피아의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싸워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은 뒤 싸우고, 꼭 싸워야 할 때는 정상적인 실력 요소만이 아니라 기만술·위협·허풍 같은 변칙도 적극 구사하는 게 장수의 본분이라고 주장한다.
-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손자병법> 구절을 올릴 정도로 이 책에 매료돼 있다. 이런 사실은 그가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물론 대통령 취임 전후 국내 정치와 대외 관계 등에서 <손자병법>에 기반한 전략·전술을 펴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표적 공격과 기만술 등 ‘변칙 전략’ 구사
* 트럼프는 북한 핵문제 대응에서 <손자병법>의 가르침을 연상시키는 기만술을 보였다. 2017년 초,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자 트럼프는 이에 맞서 핵 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호를 한반도로 향하게 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전 세계가 주목했지만 칼빈슨호는 북한을 향하고 있지 않았고, 실제로는 북한에서 5600km 떨어진 해역에 있었다.
-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이와 관련해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전략 미사일이 비어 있는 미사일 발사관이라는 의혹을 받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도 ‘공성계’를 펼쳤다”고 했다. 공성계는 아군이 열세일 때 방어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으로, <손자병법>에서 권하는 기만술의 하나이며 중국고대 병법서인 <36계> 가운데 제32계이다.
- 트럼프는 2015년 여름 공화당 당내 경선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젭 부시(Jeb Bush)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단숨에 제압하는데도 손자병법식 전략을 적용했다. 젭 부시는 아버지와 형이 모두 대통령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1천억원이 넘는 정치 자금을 경선 과정에 뿌렸었다. 그런데 트럼프에겐 왜 적수가 되지 못했을까?
- 트럼프는 “젭 부시가 에너지가 없고(low-energy) 유약하다”며 그의 약점을 집요하게 부각했다. 그 해 8월 중순 워싱턴포스트(WP)와의 35분짜리 인터뷰에서는 다른 공화당 경선 후보들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젭 부시만을 표적으로 삼아 무려 33차례나 그를 집중 공격했다.
- 트럼프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파산한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에서 젭 부시가 연봉 130만 달러(약 15억원)를 받는 고문을 맡았다는 사실을 포함해 부시의 언행, 과거 경력부터 부시 가문에 이르기까지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부시 전 주지사의 지적능력에 대해 “똑똑하지 않는 것 같다. 부시의 인터뷰를 봤는데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노골적으로 깎아내렸다. 또 그의 경제정책 입안 능력과 관련해 “리먼에서 한 일을 보라”며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인간이 무슨 경제정책을 논하겠느냐”고 비판했다.
- 한마디로 부시 전 주지사가 대선 후보로서 “수준 이하”라며 “내가 많은 거래를 통해 많은 사람을 분석해봐서 아는데 부시는 사람은 좋지만 미국을 다시 번창하게 할 사람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트위터를 통해 “부시의 어머니도 부시 전 주지사가 출마해서는 안된다고 했다”며 송곳 같은 공세를 계속했다. 이에 젭 부시는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하고 무너졌다.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자”
* 젭 부시는 트럼프에게 분명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그의 내실이 의외로 허술한 것을 간파한 트럼프는 화력을 집중해 반드시 이기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그래서 동원한 게 <손자병법>의 “공격은 이길 수 있을 때 한다”, “먼저 승리를 빼앗기지 않게 준비하고 이길 기회를 기다린다”였다.
- <손자병법>은 또 “옛날에 전쟁을 잘했던 사람은 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에 이긴다”고 했는데, 트럼프는 젭 부시와의 결전을 ‘쉽게 이길 수 있는 전쟁’으로 만들었고 결국 승리를 쟁취했다.
- 손무는 ‘싸움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그 기세가 맹렬하고 순간적인 기회를 포착해야 하고, 다 이긴 싸움일수록 사납게 흐르는 물과 같은 기세로 제압하라’고 주문했다. 2016년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힐러리 클린턴(Hilary Clinton) 민주당 후보와 대결하게 된 트럼프는 손무의 가르침을 따라했다. “쏟아지는 계곡물이 바위를 떠내려가게 하는 것처럼,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그 기세가 맹렬하고 빠르다”는 <손자병법>구절대로 강력하고 맹렬한 ‘세’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세 차례 진행된 TV 토론에서 힐리리가 공직에 있는 동안 저지른 잘못들 – 리비아 뱅가지의 미국 영사관 테러 사건 때 600번이 넘는 구조요청을 무시해 4명의 인명 손실 초래, 공무에 개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하고 3만여 건의 이메일을 영구 삭제 등 –을 집중 추궁하며 “내가 당선되면 당신은 감옥에 가게 될 겁니다”며 맹공을 가했다.
- 2016년 10월 9일 열린 힐러리 클린턴과의 2차 TV 토론의 경우, 트럼프는 무대 절반을 활용하며 클린턴이 얘기할 때도 사자처럼 그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이는 클린턴보다 자신이 더 강하고 건재하며 공격할 에너지가 넘친다는 이미지를 심으려 의도된 ‘보디랭귀지(body language) 전략’이었다. 반대로 클린턴은 청중에게 다가가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면서 트럼프가 말할 때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경청했다.
- 강렬하고 저돌적인 기세로 공격하는 트럼프의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반대로 즉답을 회피하며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 힐러리의 태도는 회의감을 확산시켰고 결과는 힐러리의 패배였다.
- 트럼프는 자신이 어떻게 <손자병법>을 읽게 됐으며 어떤 방법으로 현장에 응용하는지에 대해 밝힌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손자병법>에서 강조하는 장수가 갖춰야 할 승리의 5가지 조건 중 하나인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자’이다. 또 적(상대방)과의 싸움을 할 때 어떻게 싸워야 하며, 어떻게 이기는지를 잘 알고 있는 리더이다. 수많은 협상과 거래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손자병법>에서 그가 터득한 전략적사고 이다.
간결·신속·핵심 찌르는 트럼프 언어의 마력
* “루비오는 돼지같이 땀을 흘린다.”
- 2015년 9월 미국 CNN이 마련한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 토론회에서 트럼프가 한 말이다. 미국 대통령 후보 예정자로선 과거에 상상도 못한 상스러운 말을 트럼프는 TV 화면 앞에서 당당하게 했다. ‘공화당판 오바마(Republican Obama)’로 불리는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1971~)는 차세대 유망주로 꼽히는 미국 상원의원으로 2015년 대통령 예비후보 경선에서 트럼프와 맞붙었다. 선거 캠페인이 진행되면서 트럼프의 발언은 더 직설적이고 거칠어졌다.
- “루비오, 당신은 손이 작으니 남성의 그것도 틀림없이 작을 거다.”
- “힐러리 클린턴,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 ‘나쁘다(bad)’라든가 ‘재앙(disaster)’ 같은, 점잖은 워싱턴 사람들이 평소 쓰지 않는 난폭한 단어들을 트럼프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많은 지식인들과 주류 언론매체는 ‘저급한 트럼프’라고 경악하면서 그의 상스런 말투를 비난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추천하는 <트럼프처럼 협상하라(Trump-style negotiation : powerful strategies and tactics for mastering)>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 “만일 상대가 거친 언어를 쓰거나 유치한 농담을 즐기면 거기에 맞추어 ‘그들의 말’을 씀으로써 더 가까워질 수 있다!”
-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 중 하나가 ‘나의 언어’가 아닌 ‘그들의 말’을 쓰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층이 알아듣고 공감하기 쉬운 어휘를 전략적으로 구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저서 <CEO 트럼프, 성공을 품다(TRUMP 1010 : The Way to Success)>에서 이렇게 말한다.
- “무슨 일을 하든 간결하고 신속하고 곧장 요점을 찔러주도록 하라. 간결하게 한다는 것은 예절바른 일이다.”
- “나의 협상 기술을 분석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내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빨리 정곡을 찌르기 때문에 우위를 점한다고 말한다. 나는 곧바로 요점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나는 말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 거래 내역을 다 그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미국 연방 하원의원(3선)을 지낸 김창준(Jay Kim·1939~) 전 의원은 트럼프의 화술을 이렇게 평가한다. “트럼프는 자기 머릿속의 생각을 그대로 말로 뱉어버리는,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매력이 있다. 고급 단어를 사용하며 일반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투를 사용하는 기존 정치인들의 언어나 행동은 그들의 행동거지를 100% 믿지 못하게 한다. ‘무슨 꿍꿍이를 숨기기 위해 대중이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대통령 후보가 트럼프처럼 단순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유권자들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예측 가능한 패턴 드러내지 않는다”
* 트럼프의 막말은 백인 노동자들과 농업 벨트(farm belt)로 불리는 중서부 농업지대 거주 농민 같은 핵심 지지층에게 엄청난 대리 만족을 안겨주면서 폭발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트럼프는 막말과 상스러운 말만 하는 게 아니다. 말한 내용도 서로 모순되며, 상습적으로 금방 말 바꾸기를 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 관련 협상을 벌이던 2019년 8월 23일 트럼프는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을 ‘적(enemy)’이라고 공개적으로 규정했다. 그러다가 사흘 후인 26일엔 시진핑을 ‘위대한 지도자(a great leader)’, ‘훌륭한 사람(brilliant man)’이라고 불렀다. 상대국 국가 정상에 대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온순하고 격조 있는 표현을 점잖게 했지 트럼프처럼 막말을 마구잡이로 바꿔가며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미국 주류매체들은 그의 오락가락 행보가 세계 경제에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이것이 내가 협상하는 방식(It’s the way I negotiate)”이라고 반박했다.
- 트럼프는 자신이 이런 오락가락 발언을 하는 이유를 저서 <불구가 된 미국>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엇을 할지 말하지 않고, 경고를 보내지 않으며, 예측 가능한 패턴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무슨 행동을 할지, 혹은 생각을 하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다. 나는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중략) 나에 대한 많은 비판자들은 모두 기존의 규칙을 따르고, 예측할 수 있는 단계를 밟으며, 통념에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온순하게 경기를 하느라 바쁘다. 나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없다. 패를 드러내는 것은 저지르지 말아야 하는 아주 멍청한 실수다.”
- 트럼프가 모순되는 막말을 되풀이하는 것은 다분히 ‘계산된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성공적인 협상 방법을 소개하면서 “먼저 상대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동요를 일으키게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사건을 일으켜 남들을 시험하는 것이 재밌었다”며 “(상대방이 갖는) 초조감은 이중의 날을 가진 칼이 될 수 있다. 초조감이 거래를 성립시킨다”고 말했다.
-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는 상태와 정반대로 상대방을 당황하고 초조하도록 만드는 게 승리를 따내는 묘수라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군사들에게서는 사기를 빼앗고, 장군에게는 마음(평정심)을 빼앗아야 한다”는 대목을 빼닮았다. 비상식적인 막말을 구사함으로써 적을 헷갈리게 하고 대응 못하게 무력화하는 노림수인 셈이다. 트럼프는 한 술 더 떠 항상 뻔뻔하고 거만한 태도를 고수한다. 지식이 거의 없는 분야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로 말한다.
되받아치고, 후려치고, 크게 생각하라
* 대통령이 되기 전 한 집회에서 “나는 미군 최고위 간부보다 이슬람국(IS)에 대해서 잘 안다!”고 큰소리쳤다. 선거 유세 중에는 “나는 정말로 머리가 좋고, 부자다!”라고 반복해 말했다. 대통령 입후보 연설에서는 멕시코 이민자를 “(미국에) 마약과 범죄를 갖고 들어오는 강간범!”이라고 불렀고, 이후에 ‘이슬람교도 입국 일시금지’ 같은 폭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런 발언들이 언론에 크게 부각되면 트럼프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 2016년 12월 초, 중국과 미국 언론은 불난 호떡집처럼 소란스러웠다. 트럼프가 중국 지도자와 접촉에 앞서 차이잉원(1956~) 타이완 총통과 먼저 통화를 한 탓이다. 이는 1979년 미국과 중국이 맺은 ‘하나의 중국(One China Policy)’ 원칙을 정면 위반한 것이었다. 중국 외교부가 즉각 항의 성명을 내자 트럼프는 반박했다. “그러면 너희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를 사전에 미국과 협의했다?” 미·중 수교 후 버락 오바마를 비롯한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하지 못한 강단 있는 ‘투사’의 모습이었다.
- 트럼프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되받아치기(일명 파이트 백·fight back)’전술에 익숙해 있다. 그가 <거래의 기술>에서 한 말이다.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나도 특별히 잘 대해준다. 그러나 나를 이용하거나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치열하게 대응한다. 내 경험으로 보아 신념을 위해 싸우면 대개는 최선의 결과를 낳게 된다.
-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선생님 얼굴에 멍이 들게 한 적이 있다. 음악 선생님이 ‘음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꾸짖어서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중략) 나는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내 생각을 알리고자 했다. 지금에 와서는 주먹 대신 머리를 쓰려고 하는 점이 바뀌었을 뿐이다.”
- 뉴욕시가 트럼프 타워에 대해 높은 세금을 부과하자, 뉴욕시를 상대로 무려 6개의 소송을 내며 정면 대응한 것도 트럼프 특유의 ‘되받아치기’ 전술에서다. 소송비가 엄청나고 승소할 확률도 낮았지만 ‘부당하게 대하는 상대에겐 철저히 반격한다’는 생각에 충실한 트럼프는 승소했다. 반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뉴욕 부동산 업계에서도 트럼프는 이런 맞대응으로 살아남았다.
- 그는 ‘큰 생각(big thinking)’과 ‘지렛대(leverage)’ 전술도 애용한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지은 트럼프 타워는 ‘큰 생각’의 산물이다. 그는 200만 달러를 들여 건물 내부에 24m에 이르는 폭포를 만들었다. 또 멋진 청동제 에스컬레이터를 만들기 위해 보통의 에스컬레이터보다 100만 달러를 더 투자했다. 로비 바닥과 지상 6층까지 모두 이탈리아제 최고급 대리석을 사용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큰 생각’으로 통 큰 투자를 해 건물 전체를 명품으로 만든 것이다. 보통 맨해튼에 비슷한 크기의 건물에 드는 비용보다 많은 돈을 들였지만 훨씬 더 높은 가격으로 분양을 마쳐 투자비를 거뜬히 회수했다.
- “여러 가지 면에서 일을 크게 벌이는 편이 성공 가능성이 더 크다. 브롱크스에서 단독주택을 구입하는 것보다 맨해튼에서 고층 빌딩을 짓는 일이 더 쉬울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생각하기를 두려워한다. 심지어 불가능한 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크게 생각하는 문제에 있어 당신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 트럼프는 ‘후려치기’의 명수이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던 2016년 12월 초, 그는 “보잉사의 차세대 대통령 전용기인 보잉 747-8의 가격이 40억 달러인데 이것은 말도 안 된다. 가격을 내리지 않으면 주문을 취소하겠다”고 트윗을 날렸다. 점잖은 미국 대통령이 물건 값을 깎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결국 보잉사는 18개월의 ‘밀고 당기기’ 끝에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으로 사용될 신형 항공기에 대해 각종 할인 등을 적용, 당초보다 10억 달러 이상 낮은 가격으로 2018년 7월 계약을 맺었다.
‘패’ 다 드러나…혁신과 자기 부정 필요
* 그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팜비치에 있는 방 126개짜리 마리라라고(Mar-A-Lago) 대저택을 평소 호가(2억5천만 달러)보다 훨씬 낮은 7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반대로 트럼프 타워의 콘도미니엄을 분양할 때는 20배까지 높은 가격에 팔아치웠다. 살 때는 가격을 낮게 제시하고, 팔 때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하이 볼(High Ball)’ 전술의 위력이다.
- 하나의 방법이나 결론에 집착하지 않고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는 데서 트럼프의 혁신성은 한층 돋보인다. 그는 “선택의 폭을 가능한 한 넓게 유지하라”, “나는 거래에서 유연한 자세를 유지한다. 최소한 대여섯 가지 방법을 동원해 일을 추진한다. 한쪽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다른 쪽에서 이익을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의 모든 말과 행동은 미국의 국가 이익 증진, 즉 ‘미국 제일주의’ 하나로 집약된다. 그는 이렇게 밝혔다.
- “내가 하는 모든 거래는 오직 하나의 목표를 추구할 것이다. 바로 ‘미국의 승리’이다. 우리는 미국의 시장과 소비자가 지닌 경제력을 활용하여 친구들을 돕고, 적들에게 협력의 혜택을 상기시켜야 한다.”
- 이를 달성하려는 결의도 굳세다. “나는 크게 생각하고, 높이 겨냥하며, 목표와 그 너머를 향해 계속 밀어 붙인다. 결국 원하는 곳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처음에 세운 기본적인 목표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 트럼프가 추천한 지혜의 책 9권
<The Art of War>(손자병법) 손무 지음 – 기원전 6세기에 쓴 군사 전략의 고전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적극적 사고방식) 노먼 빈센트 필 지음 – 1952년에 처음 출간된 책으로 성공에 필수적인 행동 개념과 법칙을 담고 있다.
<Essays and Lectures>(랠프 월도) 에머슨 지음 – 누구나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에머슨의 명료한 사상을 적은 책
<Mein Weltbild>(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아인슈타인 지음 –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포괄적으로 사고하는 지성인 아인슈타인의 진가를 보여주는 책
<Team of rivals : the political genius of Abraham Lincoln>(권력의 조건)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The Last Lion : Winston Spencer Churchill> 윌리엄 맨체스터 지음 – 두 권으로 이뤄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 대한 전기
<No Ordinary Time : Franklin & Eleanor Roosevelt : The Home Front in World War 2>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 미국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시대와 루스벨트 대통령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다.
<The Golden Ratio> 마리오 리비오 지음 –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숫자인 황금비율 파이에 대한 이야기
<Rich dad poor dad>(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2) 로버트 기요사키, 샤론 레흐트 지음 – 똑똑하게 일하고 부자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출처 : US News & World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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